정순석 목사(1922~1981)는 1959년 2월 서울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열심히 기도드렸다. ‘아무도 안가는 곳,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 바로 그곳이 나의 갈 곳이 아닌가.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마침 충남 서산군 ‘영락원’이라는 음성 나환자 마을의 천막교회에 목회자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갔다. 막상 가보니,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그날 밤, 숙소에서 “순석아, 그래도 네가 나를 위해 어디든 가겠다고 기도했더란 말이냐? 그들은 내 자녀가 아니더란 말이냐?” “주님, 그래도 저는 도저히 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 밤새 정순석은 눈물로 지새우며 울고, 또 울었다. 동이 휜히 터올 무렵, “주여,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침 일찍 소개한 목사님을 찾아갔다. “영락원에 들어가겠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들어왔지만, 그들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사범학교시절에 감명깊게 읽은 데미안을 생각했다.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자신도 문둥이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들의 고름을 자기 상처에 발라 문둥이가 되어 평생을 문둥이들과 함께 했다는 글이다. 정순석은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희생한다고 했으나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몸은 이곳에 있었으나……. 내 몸에 나병이 옮겨질까 봐 얼마나……. 주님,  십자가의 사랑이 내게도 있게 하옵소서.” 아침, 정 전도사는 몸 상태가 가장 나쁜 집사님에게 가서 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전도사님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더구나 전도사님을 위해서도 이건 안 된다고 생각하며 고민하다 잠이 들었는데, 사렙다 과부의 대접을 꿈꾸고 순종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여 정순석의 평생의 나환자촌 사역이 시작되었다.

그는 북한에 부인을 두고 월남했기 때문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교회는 천막이요, 영락원 주민들의 집은 토굴과 같은 판잣집이었다. 그들은 삶에 의욕이 없었으므로 일 할 의욕이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사람들을 성경말씀대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때로는 눈물로 호소하여 함께 개간과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영의 양식과 육의 양식을 먹이는 피눈물 나는 사역이다.

이렇게 하기를 22년, 마침내 그는 영락원을 사람이 사는 곳, 사람이 살 만 한 곳으로 변화시켰다. 정 목사는 나환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다 했다. 닭, 개를 기르고 돼지를 치면서 교육을 시켰다.

지금 그가 없는 영락원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심었던 밤나무가 향기를 토하면서 온 산에 가득하고, 돌산을 깨어 닦아 놓은 길을 따라 낚시꾼들이 마을 앞 저수지를 찾아온다. 버스가 다니고 트럭이 사료를 실어오고 이곳에서 나오는 가축을 실어낸다. 이렇게 험한 곳에서 고생만 하는 정 목사를 보고 형제들이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면 그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한번 하나님과 약속한 것을 내가 싫다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나?”라고 하였다(단12:3, 마25:34, 요1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