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성 목사 [용산 초대교회/등록문화재 제674]
가평에 자리한 ‘들꽃수목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한 개인의 노력과 수고가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곳이었습니다. 깊은 산골을 꿈에서나 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공간으로 변모를 시켜 놓았으니까요. 오랜 기간 정말 많은 수고와 땀 흘림이 열매를 맺은 현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을 방문하며 아이러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꽃’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꽃들이 마치 아이의 머리를 가지런히 빗겨놓은 듯 말쑥하게 정돈돼 ‘수목원’에서 키워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이 덜 간 들꽃을 예상했는데 그곳은 주도면밀한 계획과 구상에 따라 들꽃들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물속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생각이 쏟아졌습니다. 반영(反影)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반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과 물속의 허상이 동시에 눈에 들어오자 인지 구조가 매우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천장을 덮은 실제 유리창은 물속에서 여러 개의 가짜 유리창을 만들었고, 살아 있는 오리는 수면에서 어미 모형과 놀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실상과 허상을 확인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허상이 판치는 수목원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실상과 허상이 뒤섞여 더 멋진 수목원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으로 실상이란 렌즈나 거울에 의해 맺히는 상(象) 중에서 실제로 광선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물체에서 나온 빛이 거울이나 렌즈 등에 반사되거나, 굴절한 후 빛이 실제로 모여서 생기는 현상인데, 이 위치에 스크린을 놓으면 물체의 형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평면거울과 같이 물체에 반사되어 나온 빛으로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허상이라 하는데, 이 경우는 그 위치에 스크린을 놓아도 형상이 맺히지 않습니다. 허상의 위치에 실제로 빛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히브리서 11장에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실상은 어쩌면 스스로 바라고자 하는 것의 실체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집착이나 편견을 지닌 자신을 부정하고 그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실상으로 여기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중시하는 정의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입장에 따라 불의가 정의로운 것이 되기도 하고, 정의가 불의도 되는 것을 봅니다. 정의로운 척 수많은 말들을 쏟아 냈는데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말들이 올무가 되었고 궁색하게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면 실소가 터져 나오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진짜 무엇이 실상이고 허상인지 구별키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놈이 그놈이다’라든지 ‘내로남불’이라는 말들이 회자되는 것이 아닐까요? 무엇이 실상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현 시국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혼돈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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