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 목사 [세움교회]
다메섹(Damascus)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처음 만난 바울은 “주여, 누구시니이까?” 라고 물었다(행 9:5, 33:8, 26:15). 이 한 마디의 물음이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첫 만남이 인생을 바꿀만한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의 경우가 여실히 증명한다. 마이클 고먼(Michael J. Gorman)은 바울이 예수를 만난 사건을 가리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Coper nican Revolution)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르네상스가 한창 진행되던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인류를 단단히 감싸고 있던 자기중심의 유아적 발상을 깨트려버렸다. 칸트는 인식대상이 인식주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체가 인식대상을 결정한다는 관점과 사고의 변화를 가리켜 ‘인식론적 전환(코페르니쿠스 전회)’을 말했다.
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낡은 패러다임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 폐기될 수 있다는 것을 가리켜 ‘과학혁명’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새로운 사실의 등장으로 낡은 것으로 간주되는 혁명적 전환이 곧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정확하게 무슨 사건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말했던 다메섹 체험은 분명 ‘신비한 체험’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이 사건을 가리켜 “주의 환상과 계시”의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의 고백적 진술을 통해서 볼 때 이 사건은 신비적 만남을 넘어서 일종의 ‘묵시적 만남’이었다.
그 사건 이후, 바울의 삶과 사역에 찍힌 흔적들은 그가 하나님의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메섹 사건은 바울의 사상적 토대를 붕괴시키는 혁명적 전환을 요구받은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부활을 살았다. 그는 예수로 호흡하고, 예수를 자신의 삶으로 사상화(思想化)했다.
다메섹 사건 이후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사람에서 그리스도를 설교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모든 그의 대적들에게 행사했던 보복과 폭력을 모두 중단했다(롬 12:14~21).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그는 자신을 죽이는데 열심을 냈다(고전 15:31). 심리학적이거나 지나친 단순화를 피하면서, 바울의 변화는 오직 “십자가를 본받는 삶”이 그의 회개에서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차원이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날 이후, 예수님과 바울은 ‘서로 안에 거하는 사람들(company of coinh erence)’이 되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 나타나시고, 알려지시며,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그 부활 속에 참여하며, 그것을 살게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는 익숙한 교차점이 있다.
부활의 삶은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메섹에서 바울을 만나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다. 따라서 부활을 산다는 것은 부활을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을 알아채고,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 거기에 몰입하는 것이다. 서로 안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교회는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확인하려는 의도로 부활절을 장식하지는 않나? 채도 높은 현수막과 온갖 절묘한 구호로 부활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통해 마치 부활절이 상품처럼 팔려나가기를 은근히 기대하지는 않나? 신앙이 아닌 종교생활의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한 재미거리로 부활을 재포장하지는 않나? 아니라면, 우리 교회의 성례전은 일상적 삶에서 부활이라는 초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실천이 되고 있나? 우리 교회는 삶과 죽음의 희생적 교환 속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여 부활에 의한 영성 형성을 촉진시켜주고 있나? 더 이상 부활의 장엄한 의미와 본질을 해체하지 말자.
우리는 부활의 소비자가 아니다. 구경꾼도 아니다. 부활은 우리의 본질과 우리의 하루하루의 일상을 새롭게 하는 의미의 ‘생산처’다. 부활의 삶은 실천(practice)하는 것이다.
금년 부활주일은 공동체와 함께, 그리고 부활을 경험한 지체들과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의 친밀한 임재로 가득한 그런 은혜의 맛을 나누는 계절로 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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