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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 목사 [청지기교회]

서양화와 비교되는 동양화의 큰 특징 중 하나로 여백의 미를 들 수 있다. 캔버스를 하나도 남김없이 가득 채우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에는 채색하지 않은 공간이 그림 전체를 살려주는 미학적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여행에서도 모든 것을 빠짐없이 계획하여 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큰 계획만 가지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채워가는 자유여행이 주는 묘미도 이에 못지않다. 오히려 비어 있기에 여유가 있고, 또 정해지지 않았기에 생기는 호기심과 작은 긴장감이 여행을 풍성하게 해준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러한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것 같다.

나의 책임을 다 하되 모든 것을 맡길 줄 아는 믿음, 나는 이를 ‘성령님이 일하실 공간’이라 부르고 싶다. 모든 것을 내 뜻으로만 채우면 정작 성령님께서 일하실 여지가 줄어든다. 오히려 나의 뜻을 최소화하고 하나님께서 충분히 일하실 수 있도록 문장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어줄 필요가 있다.

영적 조급증을 치워 버리고,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하되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잠잠히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성경에 보면 출애굽 때에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이집트 군대로 말미암아 진퇴양난에 빠져서 두려움에 울부짖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 14) 하고 말씀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할 때에 알지 못하던 크고 비밀한 물속의 길을 보게 되었다. 우리 하나님 살아계시다. 범사에 주를 인정할 때에 우리 길을 지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여기에서 기억할 것이 있다.

아무리 여백의 미가 중요하다고 해도 내가 그 공간을 채우지 않으면 남은 공간도 무의미해지는 것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오해해서 하나님을 찾는 노력과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마저 멈춰서는 안 된다. 그것은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반대로 마치 혼자 다 이룰 것처럼, 나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혼자 매달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내 생각을 잔뜩 덧칠 해놓고 원망하지 말자. 남의 생각이 가득 찼다고 비판하지도 말자.

그저 나의 할 도리를 다 하고 모든 것을 주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보이자.

내 뜻은 접고 주님의 뜻이 펼쳐질 수 있도록 삶에 여백을 만들자.

어느덧 모자람이 아니라 위대한 작품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