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귀수 목사 [선목교회]
일본 아베 정부가 반도체 부품 등 1차 수출 규제 조치에 이어 한국을 아예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각의 결의를 통과시켰다. 이제 한국은 일본이 선전포고한 경제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냉정하고, 냉철하게 대응해도 될까 말까 한 위기 상황 속에서 또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반일 구호의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결정이 있던 직후인 지난 8월 2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다시는 일본에게 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백여 년 전처럼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빼앗기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나 사실상 강대국 일본에 경제적으로 어떻게 대항해야 우리가 일본에 제대로 한방을 날릴 수 있을지, 과연 그런 힘이 우리에게 있기나 한지 많은 국민들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 형편에 사태가 어디까지 갈지 걱정 반 우려 반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때에 시민단체들이 지난 주말부터 또다시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이번 촛불집회의 주제는 ‘탄핵’이 아닌 ‘반일’이다. 정부로서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제 불매운동 등 반일감정을 고조시키는 것이 내심 고마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여당의 한 연구소가 반일 감정을 더 확산시키는 것이 내년 총선에서 여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연구조사를 한 내용이 언론에 발표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 반일 촛불시위를 하면 우리 경제가 안정되고, 일본의 무역보복에 맞싸워 승전고를 울릴 수 있을까. 경제 실정과 안보 위기, 외교 실패에 따른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고 숨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리나라가 처한 긴박한 위기 상황에서 국정을 맡은 책임자라면 자기의 안위보다는 나라 걱정과 우리 기업과 경제 전반에 미칠 악영향과 국민의 살림살이 걱정에 밤잠을 못 이뤄야 정상 아니겠는가.
이 삼복더위에 국민들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반일 촛불시위에 나가는데 여당 대표와 지도부는 대낮에 일식집에서 사케인지 청주인지 낮술을 마시며 ‘반일’이 가져다줄 정치적 반사이익에 쾌재를 부르는 것이 국민으로부터 여당의 지위를 부여받은 자들이 취할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남겼다. 일제에 침략당한 조국의 현실 속에서 우리 민족을 일깨우기 위해 한 말이다. 그 의미는 우리 모두에게 과거 일제에 당한 뼈아픈 36년 고난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우리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의 반일 감정고조가 과연 역사를 잊지 않은 민족으로서 미래가 있는 행동이라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의 정서 속에는 일제가 과거에 저지른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역사 왜곡과 뻔뻔한 적반하장식의 태도를 보일 때마다 분노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참배와 헌법 9조 개정으로 군대를 합법화해 다시 전쟁이 가능한 군국주의로 돌아가려는 아베정권의 계략, 독도에 대한 끝없는 영유권 야욕,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며 생존자를 모욕하는 행위 등은 한국민 모두를 모독하고 욕보이는 후안무치한 짓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수치스런 과거사를 왜곡하는 뻔뻔한 일본에게 주는 메시지일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민족에게 던지는 비수와도 같은 교훈이다. 우리는 과거 불행한 역사에 대해 분노하고 울분을 토로할 줄만 알았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대처하는데 소홀했다.
더구나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살다가 일본이 도발할 때마다 매번 분노의 함성을 지르는 것을 반복할 뿐이다.
다가오는 8월 15일은 광복 74주년이 되는 날이다. 구호뿐인 ‘반일’이 아닌 진정한 ‘극일’을 위해 정부와 여야 정치권, 경제계, 종교 시민사회를 비롯해 온 국민이 똘똘 뭉쳐 냉정하고 슬기롭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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