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경 목사 [반월전원교회]
어느 후배 목사의 이야기가 충격을 준다. 그는 성결교회가 타교단의 교회에 비해 교회성장이 느리며 심한 말로는 성장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조금 성장하는가 하면 교인들이 타교단의 교회로 수평 이동하여 간다고 하며 목회 현장의 아픔을 토해 낸다.
이런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성령 충만한 성결인, 중생의 체험으로 구원의 확신을 간증하던 성결인, 목회자의 표상이 되었던 성결인의 아름다운 전통은 사라지고, 성결인의 자존감까지 무너진 오늘의 모습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먼저 성결인은 절대적 성결, 완전주의를 지향하던 모습에서 불완전한 죄인임을 시인하며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겸손히 고백하는 자세로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타인에게 성결한 삶을 살고 있는가라고 도전하면서, 나는 이렇게 성결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도덕주의적 완전을 강조하는 태도에서 대전환하여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이라는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불완전한 완전인”이라는 성결인의 가치관을 통해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으며, 오직 성경을 기초로 한 성령체험을 하면서 순간적인 온전함을 느끼면서도,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온전하지 못하여 더 주님께 헌신하고 더 주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할 뿐이며,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사랑, 온전한 성결 즉 절대적인 성결이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면서 목회현장에서 사역을 감당하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결인의 자존감은 수적,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리적인 사유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삶의 문제이기보다는 앎을 통한 삶에 대한 자세 즉, 얼마나 완전하지 못하면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겠는가? 아무리 사모한다고 해도 경험적으로 나의 의지나, 나의 결단으로 되지 않음을 고백하면서 겸손하게 두 손 높이 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원한다.
신령한 노래와 예배드리는 일에 힘쓰는 성결인의 공동체가 될 때에 사모한 것보다 더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으로 성결인의 자존감은 회복되며, 건강한 성결공동체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한다면, 성결인의 상표는 자타가 공인해 왔듯이 종의 모습을 지닌 섬기는 목회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헤게모니와 자리다툼에 영혼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찾기가 힘들고, 행정을 하는 지도자들은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타인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기계적인 인간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1000교회라는 한계의 벽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이 통솔하고 관리하려는 데서 오는 지도력의 한계 때문이 아닌가?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계론적 인간관, 가치관에서 벗어나 실존적 인간관, 가치관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인정하는 포용의 행정을 하는 지도자가 배출되어야 한다.
성결인의 자존감은 주님이 재림하실 그 날까지 성결의 은혜로, 불완전하지만 완전을 추구하면서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며 예배할 때에 회복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실존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인정하는 지도자들이 목회현장과 교육기관에 포진할 때 다시 성결의 바람은 지속될 것이다. - 마라나타! 주 예수의 어서 오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