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범 목사 [충훈부교회]
제 휴대폰 카카오톡 프로필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19살에 나를 구원해 주시고, 개척 30년, 목회 30년, 지방회장, 대표회장, 이사장까지 이제 조기은퇴를 결정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저는 19살에 서울 구로공단에 돈을 벌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날 ‘김일호’라는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날부터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달(月)부터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드리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3월은 제가 목회를 시작한지 만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조기 은퇴를 결정하고 장로님들과 상의한 결과 금년 3월 마지막 주일에 목회를 마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저의 결정에 대해 아주 잘 했다고 자화자찬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육십이 넘어 서면서 부터는 어떤 창의적인 계획이나 실천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냥 거기에 만족하고 안일한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 했을 때는 벌써 너무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안양지방회장, 예성부흥사회 대표회장, 총회 성결교신학교 이사장까지, 부흥회 한번 나갔다 오면 스스로 우쭐해지고, 신학교 강의를 다녀오면 잘난 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선배 목사님들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이제 결정 하였습니다. 교단목회 30년에 만 65세 이상이니, 칠십 정년은 아니지만 원로로 남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방회와 부흥사회, 교단 신학교에서 봉사하며 헌신하는 일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저의 부친이 저에게 봉범(鳳範)이라는 이름 외에 또 하나의 별명을 붙여 주셨는데 창익(彰益)입니다. 표창할 창, 더할 익, 아버님이 저에게 표창 받는 일을 많이 하라고 주신 이름으로 생각하고 저의 호(號)로 칭하였습니다. 이제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총회임원회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님들의 추천과 동기생들의 바람도 있었지만, 여기에서 마치는 것이 은혜 있는 목사로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조기 은퇴를 결정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박사원에서 같이 수학한 목사님은 임원으로 1년을 경험하고 하는 말이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총회임원회”라 했습니다.
또 저와 같은 지역에서 목회하는 목사님도 총회임원으로 1년 봉사하고 하는 말이 “어쩌면 아홉 명이 둘로 나눠져서 이쪽에서 찬성하면 저쪽에서 반대하고, 저쪽에서 찬성하면 이쪽에서 반대를 하는지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총회임원회”라 했습니다. 또한 임원으로 봉사하는 친구 목사님은 “은혜의 눈물이 다 말라 버렸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총회 일을 안 하면, 누가 예성총회와 교육기관을 이끌어 가겠습니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잘 이끌어 주시면 됩니다. 다만, 싸우는 일이나 고소 고발하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은 고소하는 일이나 고발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고전 6: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만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말만 할 수 있는 예성 총회가 되기를 바라며 2018년 원단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