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여정
류제곤 목사 (평목회 회장·합덕제일교회)

목포 유달산, 땅거미는 지고 야간 등산객을 위해 설치된 조명이 하나 둘 불을 밝히고 있는 초야(初夜)에 등산로를 따라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정상을 향해 급히 올라가는 일행들이 있었다. 평안교회(담임 정연동 목사)출신 목회자 모임인 평목회 소속 목회자들이다. 어두운 밤길에 서둘러 하산하던 등산객들은 뒤늦게 정상을 향해 숨 가쁘게 올라가는 일행들을 보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산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따라 강풍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져 야간 산행에는 적절한 날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목회 회원들의 목표는 유달산 정상이다. 그 정상에 성결교회의 대부이시며 스승이신 고 김응조 목사께서 기도하시던 기도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스승이신 김응조 목사께서 유달산에서 기도하시다 성령 체험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제자들이 알고 있지만, 그분께서 기도하시던 자리가 어디 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동역자는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 기도 바위를 정연동 목사께서는 확실히 알고 계시다며 애제자들을 대동하고 어둠을 헤치고 유달산 정상등극을 강행했던 것이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왔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목포의 야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목포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그 정상에서 자신의 문제와 영혼들을 품고 기도하셨던 기도 바위는 산 정상에 걸쳐있는 노아의 방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는 평평했고 아래는 둥근 모양으로 어림잡아 무게는 3톤쯤 돼 보였다. 지금이야 등산로가 마련되어 어렵지 않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지만 스승의 가르침대로라면 당시 김응조 목사께서는 중병에 시달리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으면 기도하다 죽겠다는 결심을 하고 가누기도 힘든 몸으로 기어오르다시피 정상까지 올라가 기도하셨다고 한다.
일행은 스승을 생각하며 잠시 그 바위에서 기도를 마친 후 다음 성지로 이동하기 위해 하산했다. 이튿날 사명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문준경 전도사의 기념관이 있는 증동리 교회와, 소록도를 거쳐, 일평생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목회하다 여순 반란 사건 때 두 아들 동인, 동신이 순교당한 후 아들들의 뒤를 이어 순교한 손양원 목사가 섬기던 애양원 교회와 기념관을 방문하게 되었다. 기념관에서 손양원 목사의 자료를 열람하던 중 손양원 목사는 장로교회 목사로 사역을 했지만 그가 순교신앙을 갖게 된 것은 그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성결교회 신자인 김교신에게서 은혜를 받고 재림신앙을 갖게 된 것이 기초가 되어 순교신앙으로 이어졌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으로는 소화해내기 쉽지 않은 코스였지만 국내성지순례를 통해 받은 감동은 목회에 큰 활력이 되고 유익이 된 것이 확실하여 교단내 목회자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마음에서 펜을 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