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한반도의 큰 아픔이자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우리민족의 가장 큰 비극이며 현재진행형 사건이다. 6.25는 수많은 순교자를 낳았으며 미처 우리가 모르고 온몸을 바쳐 믿음을 지켜낸 신앙의 선조들의 피를 통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리며 한국교회는 성장해왔다. 그 한 페이지에 성결교회 노형래 집사(사진)가 있다. 노형래 집사는 1923년 충남 서천군 마서면에서 노승우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33년 노형래가 10살 되던 해, 초등학교에서 신앙에 맞지 않는다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퇴학을 당하였다. 그는 1940년에 결혼하여 이듬해에 노태철(주님앞에제일교회 원로목사)을 낳는다.
당시 노형래 집사는 대한민족청년단 서천군 군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노형래 집사가 이렇게 교회 일과 청년단 일에 분주할 무렵,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다.
노승우 장로는 노형래 집사에게 피난 갈 것을 권유했지만 노형래 집사는 민족 청년단의 일은 뒤로 미룰 수 있지만, 교회를 두고 떠나는 것은 신앙 양심에서 용납이 되지 않았다. 예견한 대로 노형래 집사는 아버지 노승우 장로, 동생 노학래와 함께 체포되었다.
공산당원들은 3부자의 목에 장작을 올려놓고 양쪽을 발로 밟기,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춧가루 물을 코에 붓기 등 온갖 고문을 하며 회유했지만 이미 순교를 작정한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노형래 집사는 부친과 아우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기로 하였다. 그래서 공산당원에게 대한민족청년단 사업은 혼자서 한 일이라고 주장하여 아버지와 동생 학래는 석방이 되었다.
이후 노형래 집사는 대전교도소로 이송되었다가 공산군들이 퇴각할 때 교도소에 수감 된 2,857명 반공, 애국지사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그의 나이 28세 꽃다운 청년이었다. 휴전 후 대전시의 노력으로 순국한 애국지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대전시 보문산 사정공원에 애국지사 총을 건립하여 순국자들을 추모하며 기념하고 있다.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며 하나님께 충성한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아 후손들이 이를 이어오고 있으며 하나님의 사업에 여러 방면으로 크게 쓰임을 받고 있다.
유족으로는 동생 노붕래 원로목사(해망동교회), 장남 노태철 원로목사(주님앞에제일교회), 차남 노희석 목사(명일교회), 노평란 사모(화목교회 허성활 원로목사)가 있으며, 장손 노윤식 목사(주님앞에제일교회), 손자사위 유경열 목사(미국), 증손자 존 노, 외손자 허상범 목사(총회본부 선교국장), 외손부 양재은 목사(주님앞에세움교회), 외손자 허대범 목사, 외손부 김안나 목사, 증손녀 노수현 전도사(미국)는 믿음의 선조인 노형래 집사의 순교 정신을 가지고 대를 이어가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 하고 있다.
[순교열전(진수철 저 | 한국기독교순교자유족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