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시골교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자그마한 추억의 성미 주머니.
어느 날 교회 안을 이곳저곳 둘러보다 보니 옛날 시골교회에서 보던 성미 주머니와 항아리 대신 뚜껑이 덮여있는 하얀 양은 양동이가 보였다. 참 반가웠다. 그런데 항상 옆에 있어야 할 성미 그래프는 없었다.
내 생각에는 요즘 성미를 드리는 교회가 시대에 따라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껏 우리 문래동교회가 이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보이지 않은 한 모퉁이에서 하고 있었으니 못 볼 수밖에… 아무튼 좋은 사역이다.
성미 봉헌은 목회하는 교역자들의 육의 양식을 대기 위해 시작된 걸로 알고 있다.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이다 보니 교회 식당에서 식사용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추수감사절 떡도 성미로 사용했다. 밥을 지어 먹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도 나누어 주기도 했다.
한국교회 역사로 우뚝선 성미
이렇게 우리나라 시대적 상황을 타고 자연스럽게 생겨난 성미 문화는 오랫동안 한국교회 역사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다
교회마다 성미부장이 따로 있었고 여선교회에서는 중요한 직책으로 여겨졌다. 성미 일람표와 성미 주머니. 스티커는 해마다 연초가 되면 각 교회의 게시판이나 교회 입구 제일 잘 보이는 데 비치해 두었다.
성미를 뜨는 방법도 다양했다. 우리 시골 고향교회 목사님은 매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 스푼을 뜨라고 말씀하셨고 그다음 부임하신 목사님은 식구 숫자대로 한 숟가락씩 뜨고 마지막으로 예수님 몫으로 한 숟가락을 더 뜨라고 말씀하셨다.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교인들이 순종하고 매 주일 빨간 색연필로 그래프로 그렸다. 시골에 젊은 청년들이 없다 보니 연초가 되기 전에 그래프를 만들어 드리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모조지에 그려 사용하다가 좀 지나니 모눈종이가 나와서 수월하긴 했지만 여전도회 어르신들이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연말 농사를 짓는 시골에서는 방아를 찧을 때 감동되는 대로 더 가져오는 경우도 있었고. 일손이 바쁜 성도들은 때마다 성미를 뜨는 일이 쉽지 않아 한 달 치를 눈대중으로 한꺼번에 떠 큰 주머니에 담아 오기도 했다.
귀한 성미를 담을 주머니가 없어 나이 지긋하신 권사님들이 집에 있는 광목으로 손수 바느질해 만든 추억의 성미 주머니. 어느덧 광목 주머니도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 사이 성미 주머니는 진화해서 금빛 주머니에 무늬도 넣어 예쁘게 만들어져 기독교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추억 속으로 사라진 성미. 이 성미 봉헌이 아직도 서울에서 아니 우리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성도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 많은 여선교회 회원들이 워낙 은밀한 중에 육의 공급으로 보답하니 문래동교회 모든 교역자들이 유난히도 건강하신 것 같다.
추억 속으로 사라질 성미문화
성미 봉헌도 알아보니 14여선교회 중에 어느 어르신 여선교회는 성미 주머니를 이용해 동참하고 젊은 여선교회는 현금으로 매달 모아서 낸다고 하니 성미 사역도 이젠 추억 속으로 사라질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오랫동안 성미를 관리하시던 전임자들을 이어 지금은 누가 성미를 관리하고 계시나 궁금해 수소문하니 심인자 권사님이 깨알같이 정리된 성미 장부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었다. 그동안 여선교회 회원들이 남몰래 드린 정성과 헌신. 그리고 심인자 권사님의 수고함이 우리 교회를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탱해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시골 고향교회에서 식사를 할 때 목사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미는 신앙을 저축하는 것이고 귀한 쌀이니 한 톨도 흘리거나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하며 성미를 먹다 보면 좋은 쌀도 있고 묵은쌀도 있는데 교역자들은 쌀밥을 보며 성도들이 사는 삶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돌을 씹으면 그런 돌을 씹고 있을 성도를 생각하며 먹고 여러 해 묵은쌀을 먹을 때는 그런 쌀을 먹고 있을 성도를 생각하며 먹으라고 하셨다.
옛날 시골교회는 교회 공간이 많지 않아 목사님 사택 모든 공간이 교회의 부속 건물이다. 안방에서는 분반 공부를 하고 건너방에서는 찬양대 연습도 하고 예배를 마치고 놀다 보면 의례히 목사님 가정 식사하시는 데서 얻어먹게 된다. 지금 문득 생각하니 그때 그시절에 흥균이라는 철부지 초등학교 후배가 있었는데 꼭 밥을 먹을 때마다 “목사님! 왜 목사님네 밥은 맛이 없어요”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한 적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흥균아! 밥에 뜸을 덜 들였나봐 미안해”
아~아 지금 생각해 보니 성미에는 이 쌀 저 쌀 좋은 쌀 나쁜 쌀이 섞여서 들어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밥이 흐트러지고 밥맛이 없었겠구나 이제야 이해를 하는 중이다. 그때에는 벼 생산을 많이 하려고 품종 개량에 국가에서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에 양이 많이 나오는 통일벼 쌀 질이 떨어지고 일본 개량품종 아끼바리 쌀 품종이 맛이 제일 좋은데 섞어서 밥을 하니 밥 맛이 없을 수 밖에 없지. 공짜로 얻어 먹으면서 철부지 흥균이가 그 말을 했을 때 사모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좋은 쌀만 들어오면 왜 너희들에게 맛있게 밥을 못해 주겠니 이 한마디 없이 “흥균아 미안해! 사모님이 밥 뜸을 덜 들었나봐 다음에는 맛있게 해 줄게” 하시면서 넘어가셨던 그때의 사모님의 표정이 떠올랐다. 뜸을 아무리 잘 맞추어도 맛있는 밥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는데 그런 밥을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던 주의 종들 가족들이 그 시대에 드시며 생활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참 마음이 너무 아프다.
글 : 강병익 장로(문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