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이 세상에서‘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랑은 무조건적 아가페의 사랑, 완전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려고 화목제물로 그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겸손, 희생, 용서이다. 우리는 이 사랑 때문에, 구원받았다. 예수님의 겸손, 희생, 십자가 죽음 때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받았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려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최고의 사랑’으로, 속죄받아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이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 안양시 비산동에 살았다. 비산동에 커다란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다리는 안양 중심가와 내가 다니던 교회, 학교 등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비산대교는 여름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자주 범람하곤 했다. 그러면 일단 휴교령이 내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어 나는 기분이 좋았다.
홍수 때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우산을 쓰고 범람하는 다리 부근에 모여들곤 했다. 이유는 다리가 범람하면 개천 위에서 참외, 수박 등 농산물들이 황토물 위로 둥둥 떠내려오곤 했기 때문이다.
떠내려오는 개, 돼지도 봤다. 문득 피해를 본 농부와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리고 다리 양쪽에는 경찰들이 배치되어 사람들의 통행 금지와 안전관리를 했다. 가끔 생각나는 특별한 추억이다.
비산동 다리는 2개의 길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는 넓은 길, 다른 하나는 좁은 길이었다. 그런데 좁은 길에서 다리가 시작되는 지점에 작은 쌀가게가 하나 있었다. 가게는 쌀과 보리, 수수, 콩, 팥 등 잡곡도 팔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가게는 홍수 때마다 침수되었다. 주인은 몇 번이나 쌀과 곡식을 씻어 말린 후, 다시 팔았다. 그래서 침수된 어느 날,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아주머니! 이렇게 홍수 때문에, 힘드신데 왜 이사하지 않으세요?” 내게 아주머니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다음 해에도 쌀과 잡곡을 씻고 계셨다. 그분은 왜, 거기서 계속 장사하셨을까? 돈 때문인가? 이전에 있었던 일을 잊으신 건가? 왜, 침수되지 않는 안전한 곳으로 떠나지 않으셨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범람하는 죄악의 물결 속에서 아무 저항 없이 그냥 떠내려간다. 거짓과 위선, 부정과 부패, 불법과 탐욕으로 가득한 더러운 바벨탑을 열심히 쌓아 올린다. 그래서 공정과 상식, 도덕과 윤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어 다닌다. 어떤 사람은 자기 힘과 권위로 멋대로 살고 어떤 사람은 지혜가 없어 정처 없이 흔들리며 산다. 어떤 이는 죄를 떠나고 어떤 이는 그냥 죄 가운데 눌러앉는다. 공의의 하나님은 언젠가 반드시 하나님 때에 죄를 심판하시리라 믿는다. 우리는 불법과 죄를 신속하게 떠나야 한다. 영원히 떠나야 한다.
성경은 말세에 불법이 성행하므로, 사람들의 사랑이 식는다고 했다. 정말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사랑을 외면하며 멀리 떠난다. 서로 불신하며 거짓된 사랑을 속삭인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싸우다가 너무나 쉽게 헤어진다.
인간의 사랑은 조건적이고 불완전하다. 인간의 사랑은 반쪽 사랑, 이기적인 사랑이다. 겸손하고 희생하며 용서하는 사랑이, 참사랑이다. 이것이 바로‘최고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더욱 겸손해야 한다. 타인을 위해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겸손히 희생하며 용서하지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부터 부끄럽다. 하나님께 죄송하다.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는 ‘최고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실천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장선희 목사 [새빛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