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식 장로(부용중앙교회)
저는 우리 주님이 쥐고 있는 몽당연필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연필을 자를 수도 있고 깎을 수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무언가 쓰고 싶으면 쓰시고, 그리고 싶으면 그리실 것입니다. 멋진 그림을 보거나 감동적인 글을 읽을 때 우리는 미술도구나 연필을 칭찬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해서 작품을 만든 사람에 대하여 감탄합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을 보잘것없는 몽당연필이라고 말합니다. 150cm 단신이지만 영적으로는 거목이 틀림없는 그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오묘한 역사를 봅니다.
하나님은 작은 자를 들어 큰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쓰셨던 사사 기드온은 몽당연필과 같은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작은 자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내가 작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사용하시는 분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능자의 손에 붙들린 사람은 몽당연필 같아도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갑니다.
한 할머니가 연필로 편지를 쓰고 있는데 어린 손자가 다가와서 묻습니다. “할머니, 누구한테 편지를 쓰는 거예요? 편지 속에 나에 대한 이야기도 있나요?”
할머니가 손자를 보고 웃으시면서 말씀합니다. “그래 네 이야기도 이 편지 속에 있단다. 이 할머니는 나중에 네가 이 연필처럼 살면 참 좋겠다.” “할머니, 연필처럼 살아가라니요?” “놀라지 말거라 만약에 네가 연필처럼 살아갈 수 있으면 네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왜냐하면 연필 같은 사람은 다섯 가지 인생의 귀한 교훈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란다.
첫째,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기억하거라. 연필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지. 우리 손에 붙들려 있지 않으면 연필은 아무것도 못해. 연필은 우리 손이 이끄는 대로 와서 글을 쓰지. 마치 연필이 내손에 들려져서 글을 쓰는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시는 분이다.
둘째, 연필을 쓰다 보면 가끔 쓰던 것을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연필을 깎는 것은 연필의 입장에서는 많이 아프고 괴로운 일이지만 연필심을 더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필을 깎을 수밖에 없단다.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란다.
셋째, 연필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는데 잘못 쓴 것을 지우게 하기 위함이지.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일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인도해 주는 것이지. 비록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네 인생의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이지.
넷째, 연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필심을 둘러싸고 있는 외피가 아니라 바로 연필심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네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은 네 외형의 모습이 아니라 네 마음속에 있는 것이야. 네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너는 항상 귀 기울여야 한다. 세상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이 마음속의 소리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보다는 외형을 치장하기에 바쁘단다. 마지막으로 연필은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네가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되는 것이란다.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야. 그래서 나는 네가 연필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