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1960년대, 어린시절 추억 중의 하나는 친구들과 놀다가 미군트럭이 지나가면 “껌 주세요, 초콜렛 주세요”라고 말한다. 잘 생긴 미군이 껌이나 먹을 것을 주면 친구들과 나누어 먹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외국인’하면 미군, 미국사람이 생각났다. 미군은 코가 크고 노랑머리에 눈이 파랗고 얼굴은 새하얀 사람....언제나 웃으며 손 흔들어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의 상상 속에서 미국은‘천국’이었다. “미국은 지상낙원 같은 아름다운 나라일거야. 미국인들은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어린 소녀였던 내게 언젠가 미국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미국에 가리라.”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이민을 떠났다. 주변에 미국인과 국제 결혼하는 사람도 생겼다. 세월은 그렇게 정처없이 흘렀다.
나도 하나님의 은혜로 미국에서 8년간(5년 공부) 살다가 2000년 귀국했다. 때로는 소외감과 이질감을 느꼈지만 미국은 내게 제2의 고향 같고 다양한 문화를 만나며 인생을 배운 커다란 도서관과도 같다. 또한 나는 이방인이기에 외로웠지만 하나님 자녀로서 학생으로서 감사하며 살았던 평범한 한국인이었다. 지금은 미국에 대한 잔잔한 향수가 있다.
이제는‘코리안 드림’을 갖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 내가 만난 많은 외국인들이 있다.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국제 결혼한 중국 여성, 신학대학에 유학 온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인을 만났다. 파키스탄인 유학생은 한국이‘천국’이란다. 2009년 5월에 교회를 개척하기 전, 선교회(2006-2008년) 사역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한국어를 가르치거나 함께 예배드렸고 동네에서도 만났다.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한국생활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돈을 벌거나 공부한다. 그들에겐 아름다운 꿈이 있다.
나도 한 때 미국에서 이방인이었고 타향살이를 했다. 그래서 외국인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을 돕고 싶고 불신자들에겐 복음을 전하고 싶다. 나는 그들을 주안에서 사랑한다.
2010년 7월 6일(화) 저녁, 부천시 심곡동에 있는‘안타푸르나 레스토랑’에 갔다. 우리교회 협력선교사, 파키스탄인 Khurram Afftab의 저녁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5월 하순에 파키스탄 복음사역자인 그의 부친 Jaguiar Afftab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 6월 30일(수)에 우리교회 수요예배 설교를 하셨다. 예배 후에 방문하신 전도사님이 저녁을 대접했는데 그것에 대한 훈훈한 보답이었다. 식당은 부천에서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음식으로 소문난‘맛 집’이다. 그래서 손님들이 멀리서도 차를 타고 온다. 그날 저녁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Annapurna’는 산스크리트어로‘수확의 여신’이란 뜻이다. 또한 네팔 중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산지인데 8019m 산봉우리다. 2010년 4월 27일, 한국의 오은선 산악대장이 여성 세계최초 21번째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어쨌든 너무나 익숙한 식당 이름이라 반가웠다.
선교사님의 아내, 1살 딸과 아버님, 전도사님 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 10명이었다. 인도의 전통음식인 치킨과 카레 2종류와 함께 로띠(밀전병)를 맛있게 먹었다. 전도사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감동받은 이방인 선교사님 덕분에 우리는 소문난 맛 집에서‘행복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을 주셨다.
때론 권세자, 엘리트, 지도자들이 받는 데 익숙해서‘베풂’에 인색할 수 있다. 올 여름은 감히 이웃을 더 많이‘사랑하는 계절’이기를 소망한다. 더 많이 기도하며 사랑해야겠다. ‘안나푸르나 레스토랑’처럼 우리교회가 소문났으면...성결신문이‘안나푸르나 레스토랑’같으면 좋겠다. 소문난‘맛 집’처럼 읽고 싶은‘성결신문’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