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결신문사 편집위원 및 직원 워크숍
교단의 유일한 언론기관인 성결신문사(사장 이종훈 장로)가 편집위원 및 직원 워크숍을 중국 현지에서 개최했다. 9월 6일부터 하얼빈 및 용정 등지에서 열렸으며, 북한과 접경지역인 도문에서는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의 손을 함께 모으기도 했다.
사장인 이종훈(학의동교회) 장로를 비롯해 편집국장 정연동(평안교회) 목사, 편집위원 전상욱(울산수암교회) 윤규진(대구신은교회) 황성환(성광교회) 진상만(오산교회) 목사, 편집부국장 유홍열(하늘교회) 목사, 김정경 총무부장, 정윤재 편집주임이 참가했다. 당초에는 10여명의 편집위원들 대다수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타 일정과 중복되며 참석인원이 다소 감소했다.
한편 이번 워크숍에는 직전 편집국장인 부총회장 석광근(예수소망교회) 목사가 참석해 일정을 함께하며, 성결신문의 비전과 역할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눴다.
2000년도에 예·기성 협력해 복원
5박 6일의 일정 중 용정성결교회 방문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안타까움과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2000년 예성과 기성이 함께 힘을 모아 복원된 용정성결교회의 훼손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중국 용정성결교회는 성결교단의 최초 선교지로서, 규암교회 박기래 집사가 1919년 2월 북간도로 이주하여 박상환, 한치국 등 3인과 30여 명의 교포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6년 뒤에 오원근 전도사가 목회자로 청빙돼 정식으로 설립됐으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폐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건물노후로 헐릴 위기에서 노태철(제일교회) 목사가 총회장으로 있던 2000년, 기성과 예성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복원돼 새로운 교회당 건물로 탄생했으며, 용정시의 새로운 명소로 소개됐었다. 당시 기성에서는 예배당을, 예성에서는 부속건물을 맡아 봉헌했으며 봉헌식에는 양교단 임원들뿐 아니라 현지의 유력한 공산당 간부들이 참석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었다.
오랜 중국사역으로 인해 현지소식에 밝은 정연동 편집국장은 “당초에는 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됐으나 선교사역의 부작용으로 인하여 십자가와 돌비, 성결예배당 문구 등을 제거하게 됐다”며, “현재는 용정시에서 관리하는 생활 박물관으로 변경됐다”고 설명했다. 설명대로 현재 내부는 일상생활의 물건들과 행상, 무속인들이 쓰는 굿을 하는 도구 등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건물 밖의 표지문과 내부 기록에도 한국성결교회에서 복원하였다는 내용이나, 이 건물이 언제 처음으로 지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성결교단의 중국선교 교두보였던 용정성결교회가 선교유산과 민족정신을 빼앗긴 채 외형만 둥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인근지역의 일송정이나 문익환 목사 생가 비등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되던 무렵 일부 훼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대를 역사로 남기는 신문 다짐
워크숍 참가자들은 이후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학교와 해란강, 일송정 등을 둘러봤으며,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접경지역인 삼합에서 도문까지를 답사하였으며 도문 다리위에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기도하기도 했다. 이후 백두산, 북경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기간 중 세 차례 열린 예배 및 워크숍에서는 성결신문의 발전방향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제시됐다.
△신뢰받는 언론으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해 대안 있는 비판과 견제기능 강화 △큰 교회 작은 교회, 수도권 및 도서지역 교회들 간의 균형 잡힌 안배 △전국교회와의 소통의 폭 확대 노력 경주 △평신도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평신도 지면 강화 △장기적인 측면에서 신문구독 제도가 교단내 정착될 수 있도록 토양마련 필요 등이 논의됐다. 사장 이종훈 장로는 “여러 고견들을 수렴해 교단의 공기인 성결신문을 복음담긴 신문, 기다려지는 신문, 시대를 역사로 남기는 신문으로 만들어가겠다”며 편집위원들과 직원들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한편 개회예배는 편집국장 정연동 목사가, 수요예배는 부총회장 석광근 목사가 메시지를 전했다. 성결신문은 매월 2회 격주로 발행되고 있으며, 국내뿐 아니라 각 교단 및 대학교, 언론기관, 도서관을 비롯해 해외 선교지로 1만부가 배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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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회 20년간 만주 선교… 큰 결실
성결교단이 해외선교를 시작한 것은 성결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지 18년이 되는 1925년 3월이었다. 그 당시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1909년과 1912년에 만주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을 무렵, 성결교단도 만주에 선교하기 시작하였고 그 대상은 주로 정치적, 경제적인 사정으로 국외에 이주해 살고 있었던 교포들이었다.
그 후 용정교회는 부흥하여 천보산에 지교회를 설립하고 만주선교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선교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한 조승각, 황성택, 박문익, 김인석, 김선학 등이 부흥운동과 교회설립에 힘을 써 동만주 지역에서 할빈교회, 명월구교회, 목단강교회, 조양천교회, 도문교회, 연길교회 등을 또한 남만주 지역에는 봉천교회, 무순교회, 안동교회, 심양교회, 북능교회, 포하교회 등의 교회를 8·15 광복 전까지 계속하여 설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