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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의 인물 | 정순석(鄭順石) 목사
한국교회의 다미엔, 십자가 사랑의 실천자
2022-01-25 오전 10:14:00    성결신문 기자   


하와이를 처음 방문하게 되면 대부분 호놀롤루(Honolulu) 주정부 청사 앞에 세워진 동상을 보게 된다.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 모습을 한 이 동상은 바로 하와이 제도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인 몰로카이(Molokai)의 성자로 불리는 다미엔(Damien, 1840-1889) 신부이다. 

그는 몰로카이섬에 들어가 나병환자를 돌보며 자신도 스스로 나병환자가 되어 죽기까지 그들을 사랑하며 헌신하였다. 한국성결교회에도 십자가 사랑으로 아무도 들어가기 싫어한 나환자촌에 들어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죽기까지 봉사, 헌신한 자가 있으니,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도 생소한 정순석 목사이다.

 1. 출생과 성장
정순석은 1922년 3월 29일에 평안북도 용천군 양화면 장송리에서 정인택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정순석은 ‘산정무한<山情無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정비석 소설가의 동생이다.) 신의주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양시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공산당 탄압을 피해 잠시 후에 다시 만날 것이라는 기대 속에 가족을 북에 두고 월남하였다. 

전쟁 후 휴전선이 그어지고 남북의 왕래가 끊어지자 가족을 생각하며 몇 해를 눈물로 지내다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2. 영락원 사역의 시작
1959년 신학교를 졸업 후 충남 서산의 인적(人跡)이 드문 두메산골 ‘영락원’이라는 음성나환자촌(한센인 정착촌)에 들어가 천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이곳은 아무도 가지 않는 곳,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곳으로 신학교 졸업을 앞두고 정순석이 기도하던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보내 주소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으로 보내 주소서’ 두가지 기도제목에 부합하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과거 문둥병, 나병(癩病)이라 불린 한센병에 대한 의학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지 나균(나종균)이 대부분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감염되며, 치료받지 않는 환자와 오랜 시간 가까운 접촉을 통해서 전파가 된다는 사실에 대해 대부분 잘 알지를 못했다. 

일반 사람들은 음성 나환자도 불치병 감염환자로 생각하고 접촉하면 바로 옮긴다는 생각에 혐오스럽고 공포를 가져다주는 사회적 격리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따라서 음성나환자들을 감염의 통로로 생각하고 접촉이나 만남을 극도로 기피하였다. 심지어 문둥병을 퍼뜨린다며 노골적으로 돌을 던지며 가까이 못 오도록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나환자들은 이런 수모 속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집성촌을 이루며 죽을 수도 죽지도 못하는 내일이 없는 비참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야만 했다.

3. 나환자들의 대부, 정순석
정순석의 영락원의 천막교회 사역은 그리 쉽지 않았다. 숙소가 마련되기 까지 음암에서 영락원을 오가며 한손에는 성경을 들고 다른 손에는 직접 삽과 괭이를 들었다. 혼자 몸이라 나환자 성도들과 함께 일과 후 식사를 해야 하였다. 

식사 때마다 죽기를 각오하고 들어왔으나 그들이 주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어디든지 주를 위해 가겠습니다’ 서원 기도를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순종할 것을 각오하고 영락원에 들어왔으나 도저히 나환자 성도들이 주는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매 식사 시간은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배가 고파 억지로 입으로 밀어넣는 심적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지만 자신도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과 편견 속에 사로 잡혀있는 영락원 밖의 세인(世人)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러는 중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혼자 기도하면서 사범학교 시절에 감명있게 읽었던 데미안의 기억이 새롭게 일어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계속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희생한다고 했으나 내게 진정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없었습니다. 몸은 이 곳에 와있으나 나의 몸은 다른 더 아름다운 교회에 있었습니다. 나는 내 몸에 나병이 옮겨질까 봐 얼마나 두려워하며 경계하면서 살아왔는지요. 용서해 주세요. 제게 주님의 그 크고 깊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소서. 내 죽으면 죽으리이다.”

아침 햇살이 천막 안에 환하게 비쳐올 때 정순석은 일어나 영락원에서 가장 몸 상태가 안 좋은 집사에게 찾아가 아침밥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일그러진 손으로 지어준 집사의 밥을 감사한 마음으로 처음 맛있게 먹었다. 이 일은 정순석을 나환자들의 목자로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이 사건 이후 정순석은 평생 나환자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고, 그들에게 영적인 양식 뿐 만 아니라 육의 양식을 먹이는 대부(代父)가 되었다. 비탈진 황무지를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일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던 이들의 마음이 움직여 하나 둘 합세하기 시작하였다. 이들과 함께 손과 입술이 부르트고 얼굴은 까맣게 타도록 하루 종일 일하고 일하며, 돌을 골라내며 씨를 뿌리고, 길을 만들고 마을을 정비해 나갔다. 

소문이 퍼져 나환자들이 몰려들자 이들을 위해 사방으로 다니며 도움을 청하고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국유지를 불하받아 나환자들에게 분배하며 닭과 돼지를 키워 스스로 자립하도록 하였다. 야산을 개간하여 유실수를 심고, 교회 천막을 거두어내고 돌과 흙으로 빚어 성전을 건축하였다. 정순석은 1961년 4월 5일 목사 안수를 받고 하나님 앞에 더욱 다짐하였다. “주님! 저를 붙잡아 주옵소서. 주님의 사랑하는 양들을 기억하옵소서.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정순석 목사는 이후 북한에 두고 온 아내를 생각하여 독신을 고집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소외된 이들인 나환자들과 같이 평생을 함께 하며 그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다가 1981년 2월 21일 소천하였다. 한국교회의 다미엔, 그는 성결교회가 낳은 십자가 사랑의 실천자 정순석 목사이다. 

정상운 목사 [본지 논설위원. 성결대 교수]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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