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록 목사(새문교회/본지 편집위원)
20세기 선교신학의 발전은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표현해 오던 missio(보냄-선교)와 evangelion(복음화-전도)을 ‘Missio Dei’(하나님의 선교) 개념으로 발전 시켰다. Missio Dei 개념은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며(교회는 선교적 도구) 선교의 목적은 교회가 아니고 하나님 나라다”라는 칼 바르트의 신학적 영향을 받은 칼 하르텐슈타인이 최초에 사용하였으며, 이후에 피체돔이 그의 저서 ‘하나님의 선교’를 통해 확산시켰다.
데이비드 보쉬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그의 저서 ‘변화하고 있는 선교’에서 교회의 존재 목적인 선교와 봉사와 친교로 세분화하였다. 하나님 나라 운동에 있어서 선교는 광의적 의미라면 전도는 협의적 의미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공간적 개념이 될 수는 없다.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 나라 거룩한 백성 공동체의 모임’이요, 교회의 목적은 선교(missio)와 봉사(diakonia)와 친교(koinonia)라고 할 때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순례하는 교회 공동체 속에서 장애인 형제들이 소외를 당한다면 이는 교회의 본질이나 존재목적으로 보아도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불순종하는 교회이며 책망 받을 교회이다. 성경에 나타난 장애인들의 사상에 대하여 마음과 귀를 열어 보자!
구약성경에서 부정적인 면으로 죄의 결과로 인식하여 차별의 대상으로 여긴 경우도 있으나 긍정적인 면으로 살펴보면 보호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담겨 있다. 장애인이 제사장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 예물을 먹을 수 있었고, 출4:11에서는 ‘장애인을 낸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청각장애인이나 눈 밝은 자나 시각 장애인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하셨다. 다윗왕은 친구 요나단의 아들로 지체장애를 입은 므비보셋을 왕자 중 한 사람처럼 그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나누며 왕손의 예우를 해 주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 등을 여러 사건을 통하여 긍정적인 장애인관으로 바꾸셨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비유적으로 영적 장애인으로 보셨다. 바울은 고후12:7~9에서 자신의 장애를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계기로 보았고 삭개오와 중풍병자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 UN에서는 정신적-육체적 장애인에 대한 장애법이 제정되었고, 한국에서는 1980년에야 장애인 신고법이 제정 되었으나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현상과 편견, 그리고 차별 때문에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다가 1988년 장애인 올림픽 이후에 정책적인 면과 사회적 측면에서 점진적인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들의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인식이 나아졌다고 하나 일부 뒷걸음질 치는 모습도 있다. 한 예로 장애인 선교를 비교적 잘 한다고 소문난 어느 H시의 D교회에서는 본당으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 설치를 위하여 장애인들이 설치비의 50%를 마련하였는데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갈등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한국교회 선교초기에는 직접복음 전도가 허락 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병든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문맹자, 약한 자, 장애인들에 대한 디아코니아가 얼마나 활발히 일어났었는가? 진정 교회가 세상의 빛이었고 소망이었고 소망 그 자체이기도 했다.
Diakonia(기독교사회봉사)로 이웃을 섬기고 나라를 구하는 운동으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교권과 교회이기주의로 Diakonia가 실종되어 가고, 오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평이동(이웃교회 교인 빼앗기)등으로 야훼신앙과 야훼신학이 아닌 바알신앙과 바알신학으로 교회가 변질 되면서 장애인은 관심 밖으로 다시 밀려나고 있다. 한국교회는 성경에 나타난 약한 자와 소외된 자 사상을 회복하고 섬김과 돌봄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
성탄절이 다가온다. 장애인과 함께 하는 통합적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다면 이는 성육신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