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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의 인물 | 김응조 목사
한국교회의 모세 영암 김응조 목사
2022-03-28 오후 1:58:00    성결신문 기자   



김응조 목사는 한 세기 한국성결교회의 지주(支柱)이자, 예성의 사부(師父)이다. 그는 하나님과 민족 앞에 철저한 성경적인 복음주의의 보수주의 신학자로서 큰 획을 그으며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았다. 

1. 출생과 입신

김응조 목사는 소백산 줄기에 놓인 경북에서 1896년 1월 26일에 강직하고 유연한 성격의 부친 김원섭과 모친 함영국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의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며 건강하게 성장하면서 열심히 한학을 공부하였다. 소년 김응조는 12살 때에 부친이 교회 출석으로 인해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교육열이 강한 김응조의 부친은 아들을 경산에 있는 계동학교에 보내어 신학문을 배우게 하였다. 계동학교를 마친 그는 대구에 있는 계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당시 계성학교는 영남에 있는 유일한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는데 그는 어려운 고학 생활 중에도 우등생이 되고, 1916년 9월에 졸업하게 되었다.

2. 경성성서학원 입학과 일본 전도

계성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민 끝에 변호사가 되려고 법률전수학교에 입학시험을 쳤는데 부족한 일본어 지식으로 낙방의 쓴 잔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겠다는 뜻도 실패로 끝났다. 1917년 4월 15일 경성성서학원에 입학한 지 한 달만에 동양선교회로부터 일본 전도에 합세하게 해 달라는 통지가 오자 김응조는 선발된 7명 중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도일하여 해리스 선교사의 전도대에 배속되어 일본 최남단인 구주지방 각지를 다니면서 전도 활동하다가 1년 뒤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고국으로 돌아왔다.

3. 3·1독립운동과 선만(鮮滿) 전도    
 
1919년 고종의 인산일인 3월 3일을 기해 이보다 이틀 앞선 3월 1일에 전국적으로 대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경성성서학원 대표로 독립운동에 참석한 신학생 김응조는 8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일로 인해 귀향한 김응조는 고향 영덕에서 검거되어 대구형무소에서 투옥되어 대구 법정에서 4년 구형되었으나, 폭행에 가담치 않았다는 증거가 주재소 구류로 증명되어 1년 6개월 형이 최종 언도되었다. 1920년 7월 15일에 출옥 후, 동년 10월 1일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응조는 본부의 파송 결정에 따라 강원도 철원교회로 부임하였다. 그리고 다음 해는 경기도 광주 경안교회, 그 뒤에 안성교회, 아현교회를 거쳐 5년간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1926년 4월 10일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4. 유달산 신유 체험과 신사참배 거부

북선지방 감리목사로서 북선과 만주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동분서주하며 온 힘을 다하여 전도 사역에 힘쓴 결과 성결교회 부흥과 함께 김응조 목사 자신에게는 중병인 폐병을 가져다주었다. 교단 본부에서 정양을 위해 따뜻한 남쪽지역에 위치한 목포교회로 임명하였으나 목포교회는 미자립교회였다. 

김응조 목사는 교회와 주택, 그리고 생활고에 시달려 정양은 고사하고 병이 더 가중되어 고통과 낙망 가운데 죽음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궁여지책 끝에 죽기를 각오하는 큰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최후로 하나님께 죽느냐 사느냐, 이 두 문제를 갖고 호소하기 위해 유달산을 올라가 기도하다가 신유(神癒)의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앉아서 기도한 곳을 영암(靈岩)이라 칭하였다. 이후 신유에 대한 간증을 하고, 새벽에 기도회를 낮에는 사경회로 100일간 부흥회를 한 결과 새 신자를 120명이나 얻게 되었다. 1931년부터 1936년까지 호남지방회를 맡아 사역하는 중에 신개척 39개소, 교회당 건축 36처소, 신자의 증가 4,000명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는 1936년 4월 연회에서 중부지방 순회이사로 임명을 받아 지방교회 순회에 몰두하며, 독립문교회를 겸임하게 되었다.

1938년부터 일제가 신사참배를 한국교회에 노골적으로 강요하기 시작하였다. 성결교회의 최고 간부인 모씨가 신사 참배무죄론을 주장하면서 지상에 글을 발표하였다. 김응조 목사는 ‘신사 참배는 국가 의식이요 우상이 아니다’는 변절된 주장에 대해 몇 차례 반대하였으나 불응하자 위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교단과 교회를 1938년 5월 4일부로 떠났다.(필자가 김응조 목사 신사참배를 제기한 장신대 한숭홍 교수에 대해 다년간 지상논쟁을 벌인 바 최종 국가보훈처가 필자의 의견을 1997년 공식 채택함) 1938년 성결교회를 떠난 김응조 목사는 초교파적인 부흥목사로서 시국이나 사상 문제를 떠나 각 교파를 막론하고 「生命之光」을 만들어 복음을 전하였다. 

5. 8.15 해방과 부산 피난신학교 교수

해방 직후 전국 각지로 순회하면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던 그는 1946년 7월에 원고를 기고하기로 약속하는 것을 계기로 다시 성결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곧 경성신학교 전임교수로 초빙을 받게 되었다. 성결교회는 김응조 목사의 복귀와 함께 이건, 박현명, 김유연 목사를 중심으로 일제로 부터 무너지게 된 교회 재건의 발판을 새롭게 놓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은 잠시 1950년 동족상잔의 6. 25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김 목사는 전쟁 중이지만 마음에 끓어오르는 성령의 불길을 참을 수 없어서 영남 일대에 초교파적으로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독특한 자신의 메시지인 ‘말세와 예수 재림’을 통하여 피난 중의 절망 속에 빠져있는 성도들에게 새로운 소망의 활력소를 불어 넣어 주었다.

 피난 후 4년 만에 다시 신학교가 서울로 복귀하자 집필에 들어가 『사막의 생수』, 『부흥의 불꽃』, 『말세와 예수의 재림』을 위시한 수많은 단행본을 출간하는 저력을 보이면서 이후  『나는 기도해서 얻었다』, 『성서대강해』 등 총 40 여권의 책을 출간하였다.

6. 교단분열과 성결교신학교 설립

김응조 목사는 1957년 4월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당선되어, ‘정화와 부흥’ 이라는 슬로건 아래 성결교회를 바로잡고자 애썼다. 그러는 중에 한국성결교회는 1960년에 들어오면서 분열이라는 열병을 앓기 시작하였다. 1961년 4월 11일 16회 총회에서는 15회 총회에서 N.C.C와 N.A.E 두 기관에 대한 동시 탈퇴안이 보류되어 이월됨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거론되지 않고 오히려 양 기관에 더 많은 대표를 파송하기로 결정되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양 기관 탈퇴를 이명직, 이성봉, 황성택 목사와 함께 주장하던 김응조 목사는 이들과 함께 ‘복음진리동지회’(이후 예수교대한성결교회로 발전)를 조직하고 N.C.C. 및 N.A.E. 두 기관에서 단연히 탈퇴하여 성결교회 정통성을 수호하고 정체성을 확립하여 성결교회 본연의 순복음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천명하였다. 서울신학교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넘어가자 1962년 9월 20일 자신의 사저에서 성결교신학교를 개교하여 수많은 교단 교역자와 복음의 일꾼들을 배출하였다. 한 평생 하나님과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사역하던 영암 김응조 목사는 1991년 4월 17일 정든 예성 교단과 선지 동산을 떠나 주님 오시는 날까지 영면에 들어가게 되었다.
  
영암 김응조 목사, 그는 격동과 전환의 20세기 한국사와 운명을 같이하며, 한평생 이 땅에 복음만을 외치고 오로지 그 일만을 위하여 살다 간 성결교회가 낳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한국교회가 낳은 모세였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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