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9 (화요일)
총회/기관 지방회 화제&인물 특집 선교&신앙 목회&교육 열린광장 오피니언 교계&문화  
전체보기
목회
교육
건강칼럼
상담 Q & A
한권의책
 
 
뉴스 홈 목회&교육 목회 기사목록
 
10월 의 인물-손택구 목사
성결의 복음을 주창한 복음의 일꾼
2022-10-04 오전 10:30:00    성결신문 기자   



여는 말
1907년 이 땅에서 출발한 한국성결교회는 안타깝게도 1960년대 들어와 둘로 나뉘어졌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양분되었을 때 손택구 목사는 예성교단에 남아 교단의 성장과 발전에 초석(礎石)을 놓았다. 그는 일평생 성결의 복음을 외치며 성결한 삶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살다가 갔다.
    
1. 출생과 성장  
손택구(孫澤九)는 1920년 9월 6일(이 날은 음력으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17일이나, 10월 23일의 기록도 있음) 강원도 철원 관전리에서 부친 손갑종과 모친 정은영의 6남매 중에 3남으로 출생하였다. 
손택구의 부친은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대로 1943년 9월 일제에 의하여 전국성결교회에 예배 중지령이 내리고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 신앙의 길을 멈추지 않고 매일 일곱 지교회와 기도처를 순회하며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순교적 삶을 살다간 손갑종(孫甲鍾) 목사이다. 모친 정은영은 구한국 조선 왕조 정3품의 관직을 지낸 정문선의 3녀로 왕실과 가까운 사대문 내의 낙선재 근처에서 자랐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양반 가문의 기풍이 몸에 배인 품성이 고운 여인이었다. 

어린 손택구는 조용하면서도 덕성과 지혜를 지닌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어려서부터 매사 예의가 바르고 말수가 적었고, 또래 아이들과 달리 진중하였다. 

한문을 수학하던 부친 손갑종 목사는 장인의 주선으로 1902년 궁내부 서기로 5년간 봉직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결국 일제 강점으로 나라를 잃게 되자 슬픔과 고통 중에 있다가 기독교 복음을 통한 구국의 길을 찾아 숙부로부터 복음을 듣게 되었다. 이내 목회자가 되기 위해 경성성서학원에 들어가 1917년에 졸업하고 개성전도관에 부임하였다. 

이후 1919년 강원도 철원으로, 1921년 경기도 안성, 1922년 경북 김천, 그리고 1925년에는 충청도 홍산으로 파송받았다. 1931년 홍산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는 중에 목사 안수를 받고 이리를 거쳐 마지막 목회지인 충남 은산성결교회에 부임하였다. 손택구는 부친을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면서 학업을 이어 나갔다. 출생은 강원도였지만 주로 충청도에서 성장하였는데 강경상고에 입학하여 목포상고를 1938년에 졸업하였다.
  
2. 소명과 연단
1944년 22살 나이가 되자 현숙한 믿음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해방이 되던 1945년부터 4년간 충남 부여의 은산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어린 학생들을 가르쳤다. 

끼니를 걱정하던 가난한 시골교회 목회자였던 부친과 달리 교회 집사로 봉사하며 공립학교 교사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아갔다. 그런 가운데 구체적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주의 부르심 가운데 목회자의 길로 돌연 나서게 되었다. 1949년 9월 서울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에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을 바로 내주고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부산까지 피난을 가게 되었다. 

힘들고 지친 피란 생활을 하며 전쟁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도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염원대로 전쟁이 끝나지 않고 길어지게 되자 이듬해 부산 동래 온천동 금정산 기슭에 판자집으로 임시 교사로 세운 피란신학교에 들어갔다. 전쟁 중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학업을 계속하여 1953년 졸업하였다. 비록 서울 충정로의 서양식 벽돌집이 아닌 마대자리가 놓인 천막 강의실이었으나 그 곳은 손택구 목사에게 고난 속에 경건의 훈련과 연단을 통해 평생 사명의 길을 고집스럽게 한 길로 걷도록 영적 자양분을 공급하였다.                     

3. 목회와 신학 교육의 사역
손택구 목사는 신학교 재학 시 군산 해망동에 해망동성결교회를 개척하였다. 졸업 후 3년이 되던 1956년 제11회 교단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목회에 전념하여 사역하는 중에 서울신학교 학장인 이명직 목사로부터 제의를 받고 서울신학교 서무과장과 전임 강사로 봉직하였다. 

성결교단이 예성과 기성으로 분립된 후 1963년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필라델피아 Faith신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치고 Asbury신학교로 옮겨 졸업하였다. 1968년 2월 8일 귀국하여 1972년까지 성결교신학교에서 교수로 후학을 가르쳤고, 1973년부터 성결신학교 교장을 맡으며 사중복음과 성결의 복음을 가르치며 다년간 총회장으로 교단발전을 위해 헌신하다가 2011년 6월 19일 이 땅에서 달려 갈 길 다가도록 성결(聖潔)의 복음을 전하다가 주 오시는 날까지 잠들게 되었다.
 
닫는 말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베드로전서 1장 15절 이 말씀을 붙잡고 평생 성결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성결의 삶을 살다간 복음의 일꾼인 손택구 목사는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결의 모본(模本)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운 목사 [본지 논설위원. 성결대 교수]
기자 : 성결신문
관련기사
 
 

 
네티즌 의견
전체 0   아이디 작성일
 
의견쓰기
 
제2회 작은 교회를 위한 예전적 예배학교
9월 의 인물 | 찰스 카우만
목회 기사목록 보기
 
  목회&교육 주요기사
미국 인본주의 협회, 무신론 성..
인도네시아, 합법적인 교회 건축..
‘3S 시대’ 교회가 스포츠를 장..
‘2020전진대회’ 로 비전과 공..
장년부 성품 구역교재 보급
"교육기관 여름행사 미리미리 준..
총회성결교신학교 신·편입생 모..
성도들이 설교에서 가장 얻고 싶..
 
 
가장 많이 본 뉴스
  사 설

회사소개 광고안내 이용약관 개인보호취급방침 이메일수집거부


[110-091]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29ㅣ대표전화 : 070-7132-0091ㅣ 팩스 : 02-725-7079 ㅣ등록번호: 서울 다 50663
발행인: 이종만 ㅣ사장: 김종현 | 편집인: 권순달
Copyright ⓒ 2009 SKNEWS. All rights reserved. Contact: sknews12@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