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전부를 점령한 듯했던 분주함과 긴장에서 물러나 쉼과 여유가 샘 솟는 새해 처음 일하는 날입니다.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던 연말이 가져다주는 강박감을 내려놓는데서 오는 당연함이랄까요? 또 한편으로는 잔잔한 해방감도 덤으로 맛보는 기분마저 느껴집니다.
신앙인의 視線(시선)으로 宗敎(종교)라는 것이 古代(고대)로부터 時, 空間(시, 공간)을 따로 떼어냄으로써 日常(일상) 한 가운데서 初月(초월)을 경험하는 계기를 열어 주는 역할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전(temple)은 경계가 처진 제한된 구역으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그곳은 한시적이나마 시공을 초월한 공간이라는 것이지요. 인간의 계획과 노력으로 채워질 수 없는 신비의 영역 즉 은총이 부드러이 지탱해 주는 영역이 삶 속에 있음을 상기하는 공간이지요. 그래서 신앙인이라는 자체가 세상에서 누리는 감사라는 생각을 담아내는가 봅니다. 하지만 만족감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에 뒤따르는 피곤함을 피할 수 없음이겠지요.
멈춤 뒤의 다가온 시간 속에서 무언가 소유하고 성취하겠다는 욕심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요? 새해 접한 성경 말씀은 에베소서 4;17~32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행하는 것처럼 허망한 생각에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과는 담을 쌓고 죄악 된 생활을 멈추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에 따라 참된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으로 이들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각자 이웃에게 진실만을 말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분한 일이 있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 다 풀고, 뭔가 나눔에 힘쓰고, 선한 말로 듣는 사람에게 은혜를 느끼도록 해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먼저 용서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신 주님께 새해의 소망이어야 한다고 다짐해 봅니다. 여기에 세상 것으로 첨언한다면 삶에 더 많은 여백을 마련하고 싶고, 불필요한 말을 줄이고, 의도된 느긋함 속에서 연약함과 한계를 존중하고 우리에게 쉼과 위로를 주는 분에 대한 믿음 안에서 현실을 만족하며 사는 2024년이기를 소망했습니다.
‘사이 존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시간, 공간, 인간 등 세상의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것과의 ‘사이’가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이 존재는 존재론을 뛰어넘으려는 구상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사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왜일까요? 하나님 없이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많은 것으로 세신을 염두에 둬봤습니다만, 올해도 하나님과 같이 하는 길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