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성 목사 [초대교회]
설날이 가까워지면 모친은 분주하셨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실향민이시기 때문에 친척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런 이유로 누가 찾아올 사람이 없었는데도 연신 집 안팎을 오가면서 음식을 장만하시기 위해 수고를 하셨습니다. 어린 눈에는 질서 있고 규모 있게 음식을 준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특별하신 능력을 갖고 계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걸 먹어야 한 살 더 먹는거야”라며 설날 아침이면 어머니가 떠주시던 떡국이 떠오릅니다. 어렵게 구해오신 꿩고기로 떡국을 끓인 어머니는 닭고기나 소고기가 아닌 꿩고기로 끓여야 제 맛이라며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의 유래를 들려주시기도 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아궁이에 굵은 장작을 넣어서 연신 불을 집히면서 엿과 식혜를 만들어 내셨고 그로 인해 아랫목은 열기로 절절 끓어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떡국을 끓여 먹기 편리하게 판매가 되지만 그때는 미리 가래떡을 뽑아다가 하루 이틀 꾸덕하게 말렸습니다. 그런 후 직접 칼로 먹기 좋게 썰어야 했었는데 이럴 때는 아버지도 나서서 함께 힘을 보태시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런 부모님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질서 있고 가지런하며 보기 좋게 떡 쪽을 썰 수 있는가 경이롭게 생각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제 나이보다 훨씬 더 어린 부모님이셨는데 말이지요.
설날 전날 밤에는 팥을 고물로 넣은 찹쌀떡도 만드셨습니다. 이 떡은 만들어서 조금만 지나면 굳어지기에 먹기 좋도록 설날 전날 제일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음식이었습니다. 잘 쪄낸 찹쌀 반죽에 팥을 넣고 아이들 주먹만하게 동그랗게 만들어 콩가루에 묻혀내었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 굳어지면 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뿌리고 구워 먹어도 그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간 방앗간의 기계에서 가래떡이 줄줄 뽑아져 나오는 것도 신기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끈따끈한 가래떡을 한 입 베어 물면 그 어떤 행복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모친이 만들어 주시던 새해 떡국은 만두와 함께 끓여 주시던 것이었습니다. 주먹만한 황해도식 만두에 가래떡은 구색에 맞도록 적당하게 들어갔는데 사골 국물로 끓여 내시곤 했었습니다.
새해에 먹는 가래떡과 떡국은 하늘에 대한 경외와 무병장수, 재물과 풍요를 바라는 소망이 모두 담겨 있는 셈입니다. 아마도 그 많은 떡 중에서도 특별히 화려하지 않고 정갈한 모양의 가래떡을 먹는 것은 소박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 싶은 조상들의 지혜가 아닌가 보입니다.
설날을 맞으며 이제는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떡국은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7년쯤 되었습니다. 화분을 들다가 지주막하 출혈로 쓰러지신 후 2년간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신 것이 금년 봄이면 15년째가 됩니다. 날이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모친이 만들어 주시던 음식이 기억나고 특별히 명절이 되면 더욱 그분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아내가 끓이는 떡국을 먹습니다. 정성을 다 하고 마음을 모아 준비하는 것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어머니가 마련해 주셨던 설날 아침 떡국과는 맛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모양새와 풍성함에 있어서도 어머니의 그것에는 따라올 수 없습니다. 명절을 맞을 때마다 15년 전 세상을 떠나신 모친이 더욱 기억나고 설날 아침이면 떡국을 끓여 내시던 그분의 손맛이 그리워집니다.
.gif)
(2).jpg)
.gif){kind=sm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