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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실 권사 사역에 대한 역사적 평가(3)
홍대실 권사 사역에 대한 역사적 평가(3)
2024-10-14 오후 1:16:00    성결신문 기자   


넷째, 교육선교를 위한 교역자 양성기관인 성결대(성결교신학교) 봉헌
여러 개척 교회들을 단독으로 건립하거나 후원하며 헌신하고 있던 홍대실 권사는 1962년 자신의 집을 찾아온 성결교신학교 교장인 김응조 목사의 내방(來訪)을 받았다. 이성호 목사의 안내로 김응조 목사가 홍대실 권사 자택을 방문하게 된 까닭은 신학교 건물을 짓기 위한 후원금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김응조 목사는 홍대실 권사를 처음 만났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권사님! 웬만하면 신학교 하나 지어 바칠 생각은 없습니까? 선한 사업을 위해 생각하여 본 일은 없으십니까?” 라고 말하는 김응조 목사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받아 들여 3년에 걸쳐서 단독으로 성결교신학교 300평 3층 건물 교사를 지어 헌납하기로 하였다. 

홍대실 권사가 김응조 목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6.25한국전쟁 중에 3.8선을 넘어 월남할 때 드린 서원기도에 대한 순종과 복음전도의 일념에서 비롯된다.  

당시 성결교신학교는 1961년 교단 분열 이후 자체적으로 복음주의 신앙노선에 입각한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신학교를 세우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신학교를 건립하려고 하였지만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 상태였다. 1962년 9월 5일 신학생 모집광고를 내고 60명이 응시한 중에서 최종 50명을 선발하였다. 그리고 신학교 건물이 없는 상태에서 김응조 목사 사저(私邸)에서 명예 교장 이명직 목사와 함께 개교식을 하였다. 다음 해 모집을 통해 50명이 더 모집되어 100명의 학생이 2층 가정집 위, 아래층을 강의실과 식당으로, 가족들의 침실로 사용하니 어려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초창기 상황을 김응조 목사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50명 학생을 상하층을 망라해서 한집에 수용하니 마음은 한없이 기쁘나 육체는 사람에게 시달려서 괴롭다. … 다음해에 또 학생을 모집하니 역시 50명이다. 

이제는 100명이 한집에서 법석대는 판이다. 온 집안에 사람 천지이다. 안방과 복도까지 공개해도 100명을 수용하기는 불가능이다. 비용 문제도 막심하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역사가 오랜 신학교에서도 선교사가 후원하고 기본, 유지금이 있어도 곤란한 터인데 빈손 들고 믿음으로 시작한 사업이 오죽 하겠는가. 눈물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요, 낙심할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내가 책을 팔아서 대고 그래도 부족할 때에는 돌아다니면서 동냥을 하다시피 한때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못할 일이다.”   

김응조 목사는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 가운데 홍대실 권사를 만나게 되었다. 홍대실 권사는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1993년 11월 10일에 238평의 3층 벽돌 건물을 완성하고, 이듬해 8월 20일에 다시 4층 62평을 증축하여 교사를 확장시켜 주었다. 개인의 힘으로 그것도 여성의 힘으로 교단신학교를 지어 봉헌한 것은 한국교회사에 있어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후 홍대실 권사는 ‘전인적인 하나님의 사람 양성’을 모토로 목회자 양성과 기독교 사회지도자 배출을 위한 교육선교를 위해 안양의 부지 22,228평을 교지로 기증하여 오늘날 기독교 명문사학으로 성결대학교가 발전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결신학원 이사회 만장일치의 결의로 여성 최초로 성결대학교(법인 성결신학원) 제4대 이사장으로 피선되어 1969년 2월에 취임한 후 소천할 때까지 힘있게 이끌어갔다. 2024년 개교 62년 역사를 가진 성결대학교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산하교육기관으로서 사중복음 전파의 기치아래 9개 단과대학, 5개 대학원의 기독교종합대학으로 까지 발전하였다.

다섯째, 평신도 여성 지도자로서 섬김의 봉사
홍대실 권사는 6.25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간 와중에도 부산 동래온천교회 집사로 피택을 받아 부인회 회장을 맡아 피난민 성도들과 군인 천막의 판자교실로 시작한 임시 천막신학교를 위해 동분서주 뒷바라지를 하며 헌신하였다. 그녀는 1963년 11월 10일 서용란, 이용진과 함께 한국성결교회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 권사로 최초 임명되었다.

홍대실 권사는 중앙성결교회 뿐만 아니라 성결교 신생부인회 전국연합회 부회장을 1959년부터 다년간 맡으며 헌신, 봉사를 하였다. 신생부인회 전국연합회의 회장은 지금과 달리 1977년 회칙이 개정되어 1979년 박석심 권사가 평신도 최초로 회장이 될 때까지는 여자 교역자(전도사)들이 회장을 독차지하였다. 따라서 홍대실 권사의 신생회 전국연합회 부회장 직임은 당시 한국성결교 여성 평신도에 있어서는 최고 지도자의 위치였다.

교단이 분립되어 혼란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성결교회 모교회 중앙성결교회의 권사로서 1968년 4월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성락원 원장으로 취임하여 무의무탁한 은퇴 여교역자들과 교역자 미망인들을 돌보는 일도 소리없이 조용히 감당하였다. (계속)      

정상운 목사 [본지 논설위원 / 성결대 명예총장]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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