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떤 분이 국민일보(2024.11.16.)를 통하여 성결교회 찬송가 역사를 서술하면서 “성결교회 찬송가는 초기 한국교회의 주류였던 장로교와 감리교 찬송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특한 신학적, 음악적 특징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 글에서 주장한 장로교와 감리교 찬송가가 한국 장로교와 감리교에서 발행된 찬송가라면 한국성결교회 찬송가 역사를 신중하게 확인하지 못한 차원에서 언급할 수 있는 주장이다.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의 몫을 대신함에 감사한다.
한국성결교회 찬송가 역사는 ‘복음가’로부터 시작된다. 이 ‘복음가’는 1907년 7월 1일 발행되어 구령역사(활동) 현장에서 성결인들이 고창한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였다.
‘복음가’는 누구에 의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발행했는가를 실체적 자료를 통하여 제시하고자함은 첫째; 서두에 언급한 내용은 글쓴이가 좀 더 확인하지 못한 차원에서 주장한 글임을 밝히고자 함이며, 둘째; 이 글을 통하여 성결인들은 한국성결교회가 한국교회 찬송가 역사에 어떠한 영향력을 끼쳤고 어느 정도의 선도적 위치에 있었는지를 소개받으면서 성결교회 성결인으로의 자긍심을 높였으면 하며, 이를 널리 알리는 전파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해서이다.
1. ‘복음가’=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1907.7.1.)
한국성결교회는 자체적으로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한 교단이다. 물론 감리교와 장로교보다 22년 후에 설립되었는데 그때는 감리교와 장로교는 각자의 전용찬송가를 발행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성결교회는 두 교파의 찬송가를 선택하여 사용하거나, 그 두 찬송가에서 선별한 곡들을 발췌하여 찬송가를 발행할 수도 있었다(감리교 찬미가 ; 장로교 찬양가 등).
그러했다면 서두에 언급한 이의 논지가 타당하겠지만 한국성결교회는 전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1907년 5월 30일 성결교회를 설립했는데, 동년 7월 1일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정황상 전혀 두 교파가 발행하여 사용하는 찬송가로부터 어떠한 영향력도 받았다고 볼 수 없다. 그 연유는 아래와 같다.
1)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는 일본에서 선곡, 번역, 발행된 찬송가이다.
1906년 일본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한 이장하가 수양생(현 신학생) 과정 중에 당시 일본 동경성서학원과 동경복음전도관에서 매 집회 때 마다 사용하던 찬송가 곡 중에서 선별 선곡하고 번역한 후 그 학원을 운영하던 동양선교회(총리 카우만, 부총리 길보른)에 의뢰하여 일본에서 1907년 6월 8일 인쇄하고 동년 7월 1일 발행하여 한국에서 성령 체험에 의한 성결의 순복음(사중복음)사역을 전개하던 김상준과 정빈에게 보내어 한국성결교회에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복음가’ 발행은 이러하다.
1905년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한 김상준과 정빈과 1906년에 입학한 이장하 수양생이 전도인 양성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동족들에게 순복음을 전하는 구령활동을 전개할 때 사용할 목적으로 세 사람이 함께 기도하고 논의한 결과 일본어를 잘 아는 이장하에게 번역의 책임을 전임하였고, 선배인 김상준과 정빈이 1907년 4월 말 귀국하기 전까지 부지런히 작업하여 발행하고자 했을 것이지만 그리하지 못하고 약 40여 일 후인 동년 6월에 일본에서 인쇄하고 7월 1일 발행하여 고국에 보내어 한국성결교회 집회에 사용하도록 한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이다.
(1) ‘복음가’ 판권지
① 인쇄일:명치 40년(1907) 6월 8일 ②발행일: 명치 40년(주:1907) 7월 1일 정가 십전 ③번역자:이장하 ④교열자:시.이.카우만(일본 동경부 하정교정(下淀橋町) 백목(柏木) ⑤발행자:이,에,길보른(일본 동경부 하정교정 백목) ⑥발행소:동양선교회 성서학원(일본 동경부 하정교정 백목) ⑦인쇄자:촌강평길(村崗平吉; 황빈시 태전정 5정목 87번지) ⑧인쇄소:복음인쇄합자회사(황빈시 산하정 81번지)
그러므로 이 ‘복음가’는 일본 동경성서학원 수양생인 이장하가 선별 선곡과 번역을 한 후 동양선교회의 후원으로 일본에서 1907년 7월 1일 발행한 찬송가이다.
(2) ‘복음가’ 원명:‘복음가’의 원 명칭은 ‘耶蘇敎 福音歌’(야소교 복음가)이다.
(3) 용처:‘복음가’는 그 사용처가 표지에 표기 되어저 있는바, 집회와 일요학교라 했다. 사진처럼 福音傳道會(복음전도회) 聖別會(성별회) 급(及) 및 日曜學校用(일요학교 용)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므로 ‘복음가’는 성결교회 전도집회 그리고 매주일 오후 3시에 드린 성별회와 주일학교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발행한 성결교회 전용찬송가였다.
(4) ‘복음가’ 저본 (혹은 대본)
이장하가 일본 동경성서학원 수양생으로 지내면서 학원과 일본 동경복음전도관에서 부르던 찬송가 중 선별하고 선곡하여 번역한 저본이 되는 일본 찬송가는 두 권이었다. 한 권은 「구원의 노래」(救の歌, 1894)로 미즈노와 사사오가 엮은 56편의 무곡 찬송이었고, 다른 한 권은 복음창가(福音唱歌 ;미다니 다네끼지(三谷種吉, 1868~1945) 목사가 1901년에, 창작과 번역찬송)는 104편을 모아 만든 곡조찬송이다. 이장하 수양생이 매일 매일 강도 높은 현장 실천중심 전도인 양성과정을 수행하면서도 이 두 찬송가 중에서 선곡하고 번역하여 발행한 것이 ‘복음가’였다.
이 두 권의 찬송가 역시 동양선교회가 시작되기 전 일본인 목사들에 의해 발행된 일본어 찬송가였으나, 발행인들이 이후 동경성서학원과 동경복음전도관에서 활동함으로 인하여 전용 찬송가로 집회에 사용된 것이다.
이장하(김상준과 정빈)는 이 두 찬송가에서 선별과 선곡한 후 한글로 번역하여 동양선교회에 발행을 의뢰함으로 복음가로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한국성결교회 찬송가가 감리교나 장로교 찬송가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주장할 수 없다.
2)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는 동족들에게 순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구령 열정으로 발행되었다.
1905년(4월 김상준, 6월 정빈)과 1906년(이장하)에 동경성서학원에 입학하여 전도인 양성과정을 이수하고 있던 세 한국인이 이러한 훈련을 마치고 환국하여 동족들에게 성결의 순복음(사중복음)을 전할 때 사용할 선교 물품을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고민하여 결정한 것이 전도지(탕자의 회개)와 찬송가(복음가)였다. 이 두 선교 물품은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시작했고 진행한 두 종류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가’에는 동족 영혼 구령과 민족 복음화라는 구령 열정 그리고 성결의 복음 전파가 담겨 있는 찬송가였다.
3)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 발행을 요청받은 동양선교회 반응
동양선교회는 한국인 수양생들이 들고 온 한 묶음의 원고 다발을 보게 되었고, 경위와 과정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김상준과 정빈이 수양생 과정을 마치고 귀국할 때 가지고 들어가 성결전도 구령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동양선교회에서 이러한 작업지시나 건의나 제안하거나 요청한 적도 없었다.
순전히 세 명의 한국인이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진행한 것이기에 놀랍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용하여 발행토록 했다. 이장하가 번역한 기간이 김상준과 정빈의 졸업기를 맞추지 못했거나, 인쇄 발행하는 기일이 촉박하였거나 두 연유 중 하나이겠지만, 두 사람이 귀국한 후 약 40여 일 만에 발행하여 고국으로 보내어 성결 구령 현장에서 사용하도록 한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가 이 ‘복음가’였다.
(1) 동양선교회 창립자 찰스 카우만(서울신대 현대역사연구소 발행)
부록편에 ‘한국 사역은 어떻게 시작했나’에 이 ‘복음가’에 대하여 언급하기를, p523(상략) 또한 ‘이장하’라는 총명하고 잘 교육받은 젊은 청년이 축복 가운데 와서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열심 있는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 이장하 형제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복음가’를 번역하였다. 그는 어느 날 인쇄할 원고를 모두 준비해 가지고 사무실로 왔는데, 이것은 즉시 한국에서 찬송가로 사용되도록 준비되었다.(하략)
1907년 당시 동양선교회는 한국인들에 의해 작업 완료된 원고를 받아 한국인 수양생들이 요청한 대로 찬송가 곧 ‘복음가’를 제작 발행해 준 것이다.
(2) 한국성결교회 100년사(서울신대역사연구소 발행, P117)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상략)1907년 2월 전보에 의하면 이장하는 은혜가 넘치는 복음송 100여 곡 이상을 한국말로 번역해 가지고 동양선교회에 출판하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준비된 찬송이 1907년 11월에 ‘복음가’라는 이름으로 출판될 수 있었다.(하략)
물론 이 출판일 날짜는 이명직 목사의 약사를 참조한 것이지만 실제 발행일 기록(1907.11)과는 차이가 있다. 이렇듯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는 동양선교회 후원으로 일본에서 발행되었고 한국으로 보내어져 사용했다.
2. ‘복음가’ 편집 구성
1) 복음가 구성:복음가는 130곡을 17종류로 대별하여 아래와 같이 목록화했다.
(1)구속부 27곡 (2)부르심 10곡 ①기구함 2곡 (3)성결부 5곡 ①기구함 7곡 ②거룩한 생애 5곡 (4)예수재림 강림부 4곡 (5)간증 7곡 (6)감사와 찬미 15곡 (7)몸을 바침 4곡 (8)전도 6곡 ① 경성시킴 1곡 (9)믿음으로 행함 4곡 (10)천국 3곡 (11)죄인의 슬피 부름 4곡 (12)송가 3곡 (13) 구주탄신 4곡 (14)일요일 학교 2곡 (15)송별시 1곡 (16)잡록 7곡 (17)기도하는 찬미 9곡
2) 가나다 순서
(1)가부 13곡 (2)나부 13곡 (3)다부 3곡 (4)마부 9곡 (5)바부 3곡 (6)사부 13곡 (7)아부 35곡 (8)자부 22곡 (9)차부 9곡 (10)파부 1곡 (11)하부 9곡
3) 목록 생략/연락하면 확인 가능 *제목은 현대어로 변경하여 사용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는 이장하가 김상준과 정빈의 귀국에 맞추어 발행하고자 하였으나 일정을 맞추지 못하여 40여 일 후 일본에서 인쇄 발행하여 한국으로 보내는 일이 급선무인지라 서언을 쓸 여유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 점이 매우 아쉬운 것은 어떻게 발행되었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하고 명확한 것은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인 ‘복음가’는 일본 동경성서학원과 동경복음전도관에서 사용하던 두 찬송가에서 이장하 수양생이 선곡하고 번역한 130곡을 1907년 7월 1일 일본에서 발행하여 한국으로 보내어 성결 구령 운동 현장에서 사용된 찬송가이다.
재판에 해당 되는 1919년 판 ‘신증복음가’ 201곡은 ‘복음가’의 곡을 약 70여 곡 사용하면서 이장하 목사의 주도하에 토마스 부인과 여러분들의 조언으로 선택한 곡들을 스톡스의 교역로 발행했다. 그리고 3판에 해당되는 부흥성가는 헤인스 선교사 부인과 염형우의 주도하에 ‘신증복음가’에 30여 곡을 더한 242곡으로 1930년 발행하여 한국성결교회 전용찬송가로 사용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이응호 박사의 글을 인용한다.
‘복음가’의 가사는 첫째,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는 내용과 둘째, 구원 얻은 기쁨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간증하는 내용과 셋째, 구원받은 이들이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불쌍히 여겨 전도하는 내용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복음가’는 확고한 구원, 성결한 생활, 신유의 신앙, 재림의 신앙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한국성결교회 전용 찬송가였다.
그리고 현재 사용하는 개역개정찬송가에 이장하 목사를 비롯한 성결인들이 최초 번역했거나 작사와 작곡한 곡들이 102곡 있다. 그중 이장하 목사가 최초로 번역한 곡들도 20여곡 이상이며 현재 부흥찬송으로 교회에서 애용되고 있다.
<참고>
1) 이응호 한국성결교회의 역사 2, p347 원명은 ‘그리스도의 복음 구원의 노래’
2) 이응호 한국성결교회의 역사 2, p350 원명은 ‘기독교 복음창가’이며, 이 표지에 전도회 성별회 일요학교 용이라고 되어 있다.
임흥근 목사 [주의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