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성 목사(안양중앙교회)
히브리서 기자는 본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낸 지도자 모세에 대한 설명을 통해 이상적인 지도자 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상적인 지도자는 분명한 자기 정체(I-dentity)의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나이 40이 되어 과감한 신앙적인 결단을 했습니다. 히11: 24절을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자기는 애굽인의 혈통을 지닌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은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권력과 명예와 향락의 상징인 공주의 아들 됨을 스스로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나는 애굽인이 아니다”라는 분명한 선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호화로운 문화혜택, 향락, 권세를 휘두를 수 있는 모든 권력이 내가 가질 권세가 아님을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주어진 행운을 스스로 포기하고 고난을 선택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그는 드디어 자기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격하시키고 공주의 아들 됨을 포기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방법과 수단을 다해서라도 높은 지위나 권력을 얻기 위하여 애쓰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주어진 지위를 포기하였습니다. 이 같은 포기의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에서부터 출발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권력을 누리기도 어렵지만 주어진 권력의 권좌에서 낮아지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둘째로 이상적인 지도자는 분명한 자기 사명에로의 도전이 있어야 합니다.
히11:25절에 보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에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밝혔습니다. 모세는 자기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자청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난과 핍박과 그리고 고독한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피하려고 애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 병, 실패, 고뇌, 걱정, 그리고 불행한 일이 닥치면 종종 이런 것은 곧 저주나 죄의 대가라고 속단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더 성숙해져야 하겠습니다. 모세는 동족의 어려움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들은 항상 두 가지 가능성의 갈래 길에서 방황할 때가 많습니다. 호화로운 바로 왕의 궁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채찍을 맞으며 중노동을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에 참여하는 길입니까? 모세는 영광과 존귀와 부귀와 권력이 있는 그 호화찬란한 공주의 아들의 위치를 포기하였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에 참여하는 봉사자의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좁은 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셋째로 이상적인 지도자가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포기하시고 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그것도 가장 가난하게 베들레헴 마구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가 성장하여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고 섬기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이 섬김의 기초는 겸손과 사랑이 그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인도하고 따르는 무리를 가진 자가 지도자라면 거기엔 명령이나 채찍이나 권력의 위협보다는 겸손과 사랑의 인격적인 대화가 오히려 자신을 따르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소외된 자들을 만나셨고 병들어 절망하는 자들에게 소망의 혼을 넣어준 분이십니다.
비록 병들고 부패한 인격이나 사회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변화와 기적과 새로움이 일어납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근거한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절실히 요청되는 이 시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한국 교회를 향하여 “네 몸에 매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