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조물주는 인간을 창조하면서 행복할 권리를 주셨다. 행복할 권리는 천부적 권리요, 인간다운 삶의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은 국가의 헌법에도 보장된 법이다. 창조주는 사람에게 행복의 씨앗을 주어서 심고 가꾸고 꽃 피워서 행복의 열매를 누리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악한 영은 사람의 마음에 불행의 씨앗을 주어서 불평과 원망과 시기와 분쟁의 열매를 거두게 하여 인생을 불행의 늪으로 빠지게 만들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 이를 구성하는 요인이 기본적으로 가장이요, 일터요, 신앙 공동체이다. 이를 통하여 한 인격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어 감으로 더욱 행복감을 느끼며 누리게 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사회구성원인 공동체 안에서 행복과 불행을 경험하게 되기도 하고, 자신의 인생 밭에 행복을 가꾸기도 하고 불행을 가꾸기도 한다.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손바닥의 겉과 안과 같다. 어떤 쪽을 보느냐에 따라서 달리 보이게 되듯이, 자신이 인격의 가치관에 따라서 달리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가정(家庭)에서의 행복이다. 가정은 창조주의 사랑하심과 선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름다운 목적과 섭리를 따라서 제정된 사회 구성의 가장 작은 공동체이다. 가정은 사랑의 만남과 혈연공동체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사랑과 생명의 관계이다. 이 관점에서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서로가 사랑 안에서 하나로 세워짐을 의식하고, 가정으로의 만남은 두 사람과의 인격적인 존재가 사랑과 교제를 통하여 행복을 극대화(極大化)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직장 일터에서의 행복이다. 이 공동체는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된다. 일하고 그 대사로써의 보상이 물질로 되기 때문이다. 재물과 행복과의 관계에서는 그의 인격과 비례하게 된다. 즉 물질의 많고 적음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재물을 가치있게 관리할 지혜와 능력의 여부에 불행과 행복이 교차하게 된다. 가난하기에 불행할 수가 있다.
반면에 재물이 많기에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결국은 물질에 대한 과한 욕심보다는 그것에 대한 가치를 잘 이해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한다면 물질도 행복의 조건이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사회적 환경과 여건이 정당하게 일한 자에 대한 보상과 격려가 선진화되고 법적 제도가 잘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사회적 복지제도가 잘 정비되어서 사회적 공동체로써의 생활이 안정과 편리와 행복한 삶이 되도록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앙적 공동체 안에서의 행복과 불행의 문제이다. 신앙인은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고 얻으려고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 행복은 하나님이 그의 택한 성민(聖民)에게 약속하신 것이요(신 10:13), 이 행복은 근본적인 구원의 문제인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고 누리는 영생의 기쁨이요, 신앙 공동체가 함께 추구하고 교제하며, 나눔과 섬김의 생활을 통하여 누리는 행복이다. 기독교의 천국 복음의 산상수훈에서 증거 하신 내용 중에서 진정한 행복(마카리오스)에 대한 팔복(八福)은 천국 시민이 누릴 행복임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불행의 고난과 환란을 극복하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진리의 하나님께 복을 구해야 할 것이다(사 6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