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상해’(moral injury, 이하 MI)라는 용어는 그간 정신의학의 신조어로 사용된 의학적 주제로 인식되어왔다. MI는 신체적 상해가 아니고, 비육체적인 문제이므로 심리학, 상담학 및 심리상담, 상담심리 또는 심리치료 분야의 주제이기도 하다.
MI는 상해(傷害)의 서술적 용어 ‘도덕적’(moral)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윤리도덕 및 철학에서 다루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사회관계에서 이 문제가 빈번히 발생하므로 사회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MI의 궁극적 논의는 신정론(theodicy, 神正論)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신학적 개념 없이 이 주제를 면밀히 다루기는 어렵다. 또 MI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환경은 군대이며, 전장터라는 면에서 이 주제를 군사학, 군사심리학 등에서 다루어왔다. 이렇듯 이 주제는 작금까지 명백한 학문적 성격을 규명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으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다루어지는 학제적인 용어와 개념이 되었다.
본디, 이 용어와 개념의 수립은 군대와 전장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머레이 데이비스는 전투에서 동료 전우가 피격당해 죽었을 때 “정의롭고 사랑이 넘치고 전능하시다는 신이 이 윤리적인 우주에서 왜 비윤리적인 악에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MI를 입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종교 또는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군인의 경우, 신(하나님)을 개입시키지 않더라도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피의 현장에서 죽거나, 상해를 입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물음으로 심리정서적 고통을 받는다.
MI는 아직 기독교상담학 분야에서 연구 및 상담전문가라고 할만큼 수련받은 자가 많지 않은 생소한 분야이다. MI를 입은 사람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 상담방법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과 방향이 요구되지만 자료나 전문가가 부족한 현실이다.
MI에 대한 개괄적 이해
MI라는 용어가 신조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MI를 입은 대상자는 그로 인해 가볍게는 배신감, 실망감, 좌절감, 죄책감, 수치심, 혐오감, 갈등, 분노 등으로부터 심하게는 우울증, 불안증, 공포증, 트라우마 등 심리정서적, 심리사회적, 심리영적 다양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MI를 당한 일부는 자살을 기도하거나 자살에 이르기까지 극단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는 상담학(심리상담, 상담심리, 기독교상담, 목회상담 등)에서 심도있게 다루어야 할 주제이다. MI의 용어와 개념이 명백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정의와 개념이 광범위하고, 학문분야별로 상이하여 아직 정확하게 개념이 확립되거나 통일된 것이 없으며, 상당히 복합적이고, 복잡한 개념이다.
MI의 정의와 개념
MI는 1994년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조나단 세이가 베트남 참전용사의 정신적 피해를 다루는 책(1994년 간행)에서 신조어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초기 MI에 대한 정의는 리더십 부정행위의 결과로 인한 불의로서 위험이 큰 상황에서 합법적인 권위를 가진 사람의 배신이 있을 때 나타난다고 개념화되었다. 여기서 주요용어는 ‘배신’이다. 지도자가 응당히 취해야 할 도덕적 태도에 대한 배신인데, 이는 위선, 불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MI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체계 및 신앙에 어긋나는 일 또는 불의한 사건, 범법행위 등의 목격했거나, 그것의 지시나 압력을 받은 경우 그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의미한다는 개념으로 점차 확대된다. 밀러는 이와 같은 경우를 ‘더러운 손’(dirty hand)이라 표현했으며, 그 뜻은 권력자, 권위자, 지도자의 불법을 행해주는 손으로 이용당하는 상태라 설명했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수행자의 심리는 배신감, 실망감, 좌절감, 죄책감, 수치심, 혐오감 등의 정서이다.
MI는 어떤 대인관계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데, 특히 견고한 수직관계의 조직문화에서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직장 내 불법적이고 부도덕한 일에 대하여 상사가 이를 행하거나 또는 이런 일을 문제 삼지 않고 덮으려고 하거나, 덮도록 요구 및 명령하는 것이 MI가 될 수 있다.
근래 이 용어는 가정을 파괴하는 비윤리적인 문제를 다룰 때도 사용되는 광범위한 용어가 되었다. 부모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자녀가 비윤리적, 부도덕한 행위를 목격했거나 당했을 때 MI를 입게 된다. 교회에서 목회자에 의해 발생된 MI도 적지 않다. MI는 대인관계에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실망, 불신 등 ‘포괄적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직업적 상황에서 상사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부하직원에게 MI가 나타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다.
MI는 합법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의 불의, 부정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MI는 어떤 사람에게 확립된 도덕적 신념 및 신앙과 기대를 위반하는 행위이거나 그를 목격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MI의 가벼운 상태는 도덕적 갈등이며, 도덕적 불일치이다. ‘도덕적 불협화음’ ‘도덕적 갈등’이나 ‘도덕적 혼란’은 MI의 초기 상태를 표현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좀 더 심각한 상태에 ‘도덕적 피해’ ‘도덕적 상해’ ‘도덕적 상처’ ‘도덕적 고통’ ‘도덕적 트라우마’ 등의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용어는 MI이다.
모든 대인관계는 상대적으로 높고 낮음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하위에 존재하는 사람은 상위존재로부터 MI를 입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미국의학회에서 소개하는 MI의 내용으로서 생명을 중시하고 회복하는 사명과 열망을 가지고 의학계에 들어선 레지던트 의사의 경우, 상사 또는 선배 등이 사람의 인격이나 생명을 무시하고 사람을 물건 다루듯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상사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난 것이고, 그것을 목격하거나 당한 사람은 MI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도덕적 상해에 대한 심리정서적 현상
MI는 단지 윤리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심리사회적, 심리정서적, 심리영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복합적인 현상들이 나타난다. 자신의 윤리도덕적 신념 및 신앙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의 요구로 인해 매우 불편한 증상이 발생하는데,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것은 수치심, 죄책감이다.
존경할만한 인물로부터 MI를 입어 그 존경심이 사라지고 적개심으로 바뀌는 경우는 사회관계에서 매우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이를테면 아버지, 선생님, 교수님, 직장상사, 목사님 등으로부터 부당한 지시, 압력, 폭언, 폭행, 성폭력, 사기 등의 불법적인 일을 당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윤리도덕적 신념 및 신앙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불안이 엄습하게 되는 공통적 현상으로 인해 불안장애로 이해할 수도 있다.
MI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써 정신건강의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선행연구의 공통적 입장이다. MI는 임상 진단이 되지 않는 특정 상황이 있다. 이것이 정신질환 진단기준 구성요소에 부합되기는 하지만, 아직 정신질환 기준서라 할 수 있는 DSM-5TR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MI가 결코 가벼운 문제라고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영적 상해와 신정론 관련
MI를 다룰 때 반드시 영적 피해를 동시에 다루어야만 하고, 이에 영적 회복을 다루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의학(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다. 필립스 등은 MI는 반드시 영적 상해를 초래하게 되므로, 근본적으로 보복에서 벗어나 용서로 치유된다고 보았다.
구약의 요셉은 전형적인 MI를 입은 자로 이해할 수 있다. 형들로부터 부도덕한 처분을 당한 것, 노예로 팔린 상태에서 여주인의 모함으로 ‘성폭행 미수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수감된 것은 심각한 MI였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치료방법으로 용서를 채택했다는 내용은 성경의 내용이면서 기독교상담의 치료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장면도 전형적인 MI에 해당되는데, 왕이며, 상관이고, 장인인 사울로부터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상황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MI가 아닐 수 없다.
사무엘하 11~12장에 기록된 다윗 왕의 밧세바 강간사건은 전형적인 MI일 수 있다.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군 우리야를 전장의 사지에 몰아넣어 죽도록 하고 그 부인을 성적으로 유린한 왕의 부도덕한 명령에 대하여 주변인들(아내 밧세바에게는 사랑하는 남편, 어떤 군인에게는 상관, 어떤 군인에게는 부하, 친구, 가족)은 심각한 마음의 상처(MI)가 되었을 수 있다. 성경에 MI라는 용어는 없지만, 매우 다양한 MI를 발견해 볼 수 있다.
도덕적 상해에 대한 기독교상담적 방안
MI를 치료하는데 있어서 내담자로 하여금 영적인 복원력을 갖고, 영적인 힘을 강화함으로써 치료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영적 지지상담이 필요하다. 상담자는 우선 내담자에게 MI에 대한 심리정서적, 심리영적 상태를 진솔하게 표출토록 하고, 그것을 위로하고, 지지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기도해 주어야 한다. 본디, 정서는 정서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영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심리학자 캐리 등은 MI를 비롯한 모든 심리정서적 손상은 근본적으로 영적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듯, 회복에 있어서도 도덕적 회복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영적 회복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MI를 입은 경우, 가해행위를 한 대상에게 분노하거나 적대감을 갖거나 또는 그 반대로 자신의 문제, 갈등, 상황에 집중하여 스스로를 결함있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고 죄책감, 열등감, 수치심 등에 시달리기도 한다. MI를 바르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상해를 초래한 가해자에 대한 분노 정서를 다루어 주어야 회복이 가능하다.
분노는 정서적 손상을 초래하는 문제이지만 영성에도 치명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는데 장애가 된다. MI는 삶의 질과 행복 수준을 감소시키지만, 용서할 때 심리영적 탄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MI를 바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조직(교회 포함)에 대한 불신과 와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 MI를 입은 사람은 가해행위를 한 대상에게 분노하는 것이 기본정서이다. 하지만 용서는 기독교상담적, 심리영적 회복변인 가운데 주요한 것이다. 또한 죄책감의 해소를 위해 회개가 기독교상담적인 효과적인 방법이 된다.
전요섭 교수 [성결대학교 교양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