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전체가 AI로 대체되는 듯 보인다. 전화 상담원이 AI로 교체되고, 냉장고나 TV 같은 가전도, 신형 휴대폰에 AI 기능이 들어갔다고 광고한다.
자동차에도 AI 검색 기능이 들어간다고 자랑한다. 학계에서도 AI가 생성한 논문과 에세이를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다. 하지만 나는 AI, 소위 인공 지능을 사용하여 설교 작성에 쓸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냥 궁금한 질문을 해소하는 검색에 참고할 뿐이고, 영상 자료나 차트를 만들어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사용한다.
필자는 주변의 다른 목회자들보다 미디어 사용에 매우 적극적이다.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미디어 선교를 주로 관심 두고 공부했다. 인터넷에 처음 등장한 시기인 90년대 중반에 미국에서 공부했기에 남들보다 인터넷 활용도 빠르다. 를 제목으로 책도 펴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설교 작성을 위해 ChatGPT를 참고할 뿐이지, 작성에 사용한 적이 없다. 내가 설교에 ChatGPT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설교는 개인적이고 관계적이다. 설교는 정보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성도들을 대하면 많은 말을 듣는다. 그들 가운데는 방금 항암 수술 날짜가 잡혔다고 하고, 아들이 하는 사업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지 못해 무척 실망한 가정도 있다. 수없이 많은 성도가 아프다고 기도를 요청한다.
선교사들 가운데 지원을 바라는 편지를 주기도 한다. ChatGPT는 각 개인의 삶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들에게는 일반적인 정보가 아닌 개인적인 선포가 필요하다.
ChatGPT는 훌륭한 신학 논문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설교는 논문이나 신학교 논문이 아니다. N.T 라이트는 설교를 준비하는 만큼 기도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설교를 준비하는 데 일주일에 10시간을 보낸다면, 10시간 동안 기도해야 한다. 그의 요점은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자는 기도로 충만하라는 권면일 것이다.
설교는 매우 특별하다. 설교는 특정 시간에 특정 회중에게 전하는 특정 용어의 전달이다. 인터넷에서 채굴한 단어 패턴을 알고리즘적으로 조합하면 종교적 설교 용어가 생성된다. 설교는 여기저기에서 정보를 종합해 만들어 단순히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예배 시간에 참여한 성도들에게 담백하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선포이다.
최고의 설교는 투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설교를 ‘고통의 소명’이라고 불렀다. 설교자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씨름해야 한다. 그런 시간을 줄여본다고 AI를 사용한다면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 말씀의 전달자가 아니다.
설교는 모든 것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이다. 십자가를 선포할 것인가? 사람의 유익한 정보를 전할 것인가 설교자는 종종 중간에 서서 고민한다. 하지만 최고의 설교는 고민과 씨름하는 불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더 깊게 파고들고, 연구하고, 씨름할 때, 우리는 논문이나 TV 만담이 아니라 강력한 말씀을 가지고 강단에 오르게 된다.
설교는 효율성을 따질 수 없다. 설교자가 AI를 사용하여 초안을 작성한 다음 자신의 그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실제로 나 역시 많은 연구와 책을 쓸 때 AI를 사용한 적이 많다. 그것은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성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설교는 결코 효율성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아니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때로는 피곤하지만, 여전히 최고의 설교는 고집스럽게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하고, 공원과 시장을 걸어야 하고, 골방에 들어가야 나온다.
설교는 패러디가 될 수 없다. 설교단에서 하나님은 특정한 설교자를 사용하여 자신을 대신하여 말씀하신다. 그것은 패러디가 아닌 진정한 목소리여야 한다. 나는 사기 목사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즉, 아무리 미숙하고 혹시 결함이 있어도 설교자는 진정한 목소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설교를 위해 AI에 의존한다면 가짜처럼 들릴 것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대변자’이다. AI 기기를 지팡이처럼 사용하면 안 된다. 나중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여전히 보수적인 설교자로 남고 싶다.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