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민 목사 [한우리교회]
김정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입신양명했다. 그는 뛰어난 학자이자 예술가였다. 특히 추사체라는 그의 서체는 조선을 넘어 중국에서도 유명했다. 중국 관리들 중에도 김정희의 글씨를 한 점 얻으려고 애쓰는 자들이 많았다. 김정희는 그 시대의 스타였고, 19세기 한류의 선봉이었다.
김정희는 벼슬길도 어려움이 없었다. 스물네 살에 소과에 장원급제한 김정희는 이후 암행어사도 했고 성균관 대사성도 했다. 병조참판과 이조참판도 했다. 그야말로 김정희의 젊은 시절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김정희는 사람들에게 무례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에게 면박 주는 일이 흔했다. 조선 후기 이광사(李匡師, 1705년~1777년)라는 문인이 있었는데 그가 쓴 ‘대웅보전’이라는 현판이 두륜산 대흥사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 현판을 본 김정희는 글씨가 촌스러우니 현판을 당장 떼어내라고 했다. 이광사도 원교체(圓嶠體)를 완성한 유명한 서예가였지만 김정희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김정희가 평생 승승장구만 한 것은 아니다. 김정희는 크고작은 정치적 이슈에 휘말려 고초를 겪었고, 제주도에 유배되어 무려 8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김정희는 유배살이도 유별났다. 김정희는 유배 중에도 본가에 요구하여 최고급 간장과 민어와 어란과 숭어 등을 공수받아 먹었다. 이것들은 모두 왕의 수라상에나 오를 귀한 것들이었다. 당시 김정희의 가세는 크게 기울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희의 부인은 김정희가 원하는 것을 모두 구해서 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보내준 음식들도 제주도까지 가면서 상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김정희는 거기에 대해 타박했고,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음식을 보내라는 편지를 부치기도 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독불장군이다.
그런 김정희가 삶의 끄트머리에서 인생과 행복에 관한 글을 하나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이다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찬은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고,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부부와 자식과 손주가 함께 있는 것이다. (이상은 최태성의 ‘다시, 역사의 쓸모’ 중 김정희에 대한 부분을 발췌 요약한 것임)
화려하게 대단한 삶을 살면서, 또 그렇게 크고 좋은 것만 찾던 김정희가 인생 말년에 깨달은 행복이, ‘가족과 함께 소소한 찬을 나누는 것’이었다고 하니, 일견 허무하기도 하고, 일견 대견하기도 하다.
지난 5월 10일이 목사안수를 받은 지 26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의 목회를 돌아보면 사람의 들고 나는 것에 울고 웃는 시간이었다. 드는 사람이 내 목회를 행복하게 했고, 나는 사람이 내 목회를 힘들게 했다. 화려함에 환호했고, 초라함에 우울했다. 심지어 큰 교회 앞에 주눅들고 작은 교회 앞에 우쭐하기도 했다. 목회가 매주 이벤트였고, 경쟁이었고, 투쟁이었다. 그런 목회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코로나를 지나며 목회가 단순해졌다. 요즘은 교우들과 함께 차 마시며 밥 먹는 목회가 좋다. 예배 시간마다 정성껏 설교를 들어주는 교우들이 고맙고, 그들 때문에 행복하다.
좋은 일이 있다고 먼저 불러주는 성도들, 힘든 일이 있으면 찾아와 하소연하며 기도를 부탁하는 성도들, 때로 목사의 잔소리에 삐지며 시험에 들기도 하지만 이내 다시 찾아와 죄송하다며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성도들, 그들과 함께하는 목회가 고맙고 행복하다. 오랜 친구를 만나 격의 없는 시간을 보내고, 한 달에 두 번 책 읽는 모임에 나가 시를 읽고 독서를 이야기한다. 가끔 좋은 곳 찾아 나들이도 간다.
이 시간이 나에게는 ‘두부와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고, 그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의 ‘부부와 자식과 손주’들이다. 목회 26년 차, 이제 막 이순(耳順)이 된 나이에 나는 비로소 목회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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