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共感: sympathy)의 사전적 의미는 ‘남의 의견·주장·감정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런 기분.’이라고 한다.
인간은 일반 생물들의 본능적 행동을 유발하는 공감하는 존재를 뛰어넘어서, 이웃과 다른 생물들과 나아가 하나님과 공감하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과학의 발전은 조물주를 대신할 정도로 첨단 과학의 세상이요, AI(Artificial inte lligence)의 개발은 인간의 모습을 모방하고, 그 지능은 사람의 지능을 초월하였으며, 그 행동 범위는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의 영역을 담당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주과학의 발달은 ‘유토피아(utopia - 이상적인 사회, 이상향)’를 이루겠다는 사상을 현실화 시키려는 과학만능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앞으로 세상은 기계 인간의 세상이 될 것인가? 이러한 시대에 진정한 사람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토피아 세상을 꿈꾸고 있는 현대과학은 인간 로봇을 통한 발전을 통하여 인류의 행복을 실현해 보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AI의 발전은 사람을 대신하는 능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첨단 기술자들은 ‘앞으로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라고 장담하고 있다.
성경에서 인간, 사람이라는 히브리어로는 ‘벤 아담’으로, ‘사람(아담)의 아들(벤 )’을 의미한다. 또한 그리스어로는 ‘안드로포스(Anthropos)’인데, 이는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인류학(Anthropology)이라는 용어가 나왔고, 박애주의(博愛主義: Philanthropy - 인종적 편견이나 국가적 이기심 따위를 버리고 인류 전체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온 인류가 서로 평등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주의)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안드로포스(Anthropos)’라는 단어는 인간의 본질, 정체성, 우주에서의 위치를 논할 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에 자주 등장하며, 여기에서 ‘안드로이드(Android- 인조인간)’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이것이 곧 사람처럼 생긴 기계라는 뜻이다. 먼저, ‘휴먼 안드로이드(Human Android)’이다, 이는 이미 일본에서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감정인식이 가능한 로봇 기계 인간으로 거의 인간처럼 생겼고, 인간처럼 행동하고, 느끼는 인조인간이다. 또한 ‘에이아이 안드로이드(AI Android)’이다.
사람처럼 생겼을 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생각하고, 학습을 통하여 더욱 지능이 발달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기술이 탑재된 인간 로봇으로서 인간 지능을 통제, 사고, 대화, 결정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인간과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창조한 생령의 사람(Living Soul)과 사람의 과학기술로 만든 안드로이드(Android- 인조인간)의 경계는 무엇인가? 감정을 가진‘안드로이드(Android- 인조인간)’와의 관계가 감정적 애착과 의존이 되면, 정서적으로나 윤리, 도덕적으로 사회적 문제가 없을까?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사람을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하려는 무신론적 기술은 결국 인간의 인격적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진정한 인간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생명 존중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새로운 인간,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Giving spirit), 충만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자연과 생물과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공감(동정)할 참사람이 될 것이다(히 4: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