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장례문화는 전통 장례와 충돌 속에서 발전해 왔으며, 각 종교의 장례식이 서로 다른 절차와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선교 역사 초기부터 이교 문화권의 영향 아래 장례문화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갈등을 경험해 오고 있다.
이런 갈등 구조를 기독교적으로 극복하고, 기독교적인 장례문화로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사안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근본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다. 해외 선교 현지에서의 문화선교적인 전략도 토착화된 이교도의 문화를 기독교문화로의 재토착화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기독교의 장례문화는 역사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목회학적으로 많은 논의와 연구 가운데 발전을 거듭해 왔다. 기독교 장례문화라고 할 때 여기에는 양면성이 함축되어 있다. ‘기독교’란 표현 속에는 불변적인 요소와 ‘문화’라고 하는 표현 속에는 가변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어야 한다.
불변성이 가변성에 의해 함몰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가변적인 면의 성격을 변화시키며 주도해 나아갈 때 기독교의 정체성이 유지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 기독교 장례가 성경적인 측면에서 전통적인 장례와 충돌되는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 혼합종교의 장례예식은 경계해야 할 터
한국의 장례문화는 오랜 역사와 유교, 도교, 불교, 민간신앙, 샤머니즘 등이 뒤섞인 전통적 장례에서 출발하였고, 근대 이후 기독교(개신교, 가톨릭)의 영향으로 큰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도교, 유교, 불교가 섞여 있는 혼합종교의 장례 예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무속신앙으로 점철된 ‘기물과 부적’ 등의 우상숭배 장례 형식에 단순히 예배만 추가된 장례식으로 혼합종교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현재 장례식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방식은 죽음에 대한 세계관, 의례, 공동체 참여방식, 상징과 실천 면에서 기독교 장례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기독교 장례에서 아직도 알게 모르게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부적과 기물들이 있다. 그 기능과 의미를 살펴보면서 ‘기독교 장례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 5부적과 7기물의 의미
먼저 잡귀를 쫓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하여 붉은색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몸에 지니거나 집에 붙이는 다음의 5부적이 있다. (1) ‘운아’는 상여 앞뒤에 들고 가는 기물로 고인의 혼이 무사히 명부에 이르도록 비는 것으로 천둥과 벼락을 막아준다고 생각하는 부적이다. (2) ‘축문’은 장례식 중 제사에서 혼을 부르며 신명에게 고하는 글로 각종 제사 제문이 그것이다. (3) ‘염’을 7번 묶음은 저승 7명의 칠성신 재판에서 몸이 잘려 나가는 것을 막는 의식이다. (4) ‘다라니경’은 7층 탑으로 만들어진 칠성신에게 드리는 불경으로 저승길 가는 지도라는 것이다. (5) ‘명정’은 액운을 물리치고 귀신을 막는다는 의미로 고인의 이름을 넣은 붉은색 천으로 역시 귀신을 물리치는 부적이 있다.
그리고 접촉하거나 범하면 재해를 주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 물건인 7가지 기물이 있다.
(1) ‘습신’은 저승길 갈 때 불구덩이에서 보호하는 발에 신는 신이 있다. (2)‘ 폐백’은 보이지 않는 신에게 드리는 비단 선물로 빈(손님)과 눈에 보이지 않는 빈(귀신)에게 비단 등으로 선물을 올리는 기물이다. (3) ‘오낭’은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주는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것으로 팥/콩/고추/향 등을 넣어 귀신을 물리치고자 시신 세신 과정에 손톱, 머리카락을 넣는 기물이 있다. (4) ‘혼백 혼백함’은 죽은 사람이 머문다는 것으로 임시로 혼을 담아두는 물건이다. (5) ‘향’과 ‘향로’는 불교의 육법공양에 나오는 것으로 연기를 피워 강신이 고인을 찾아오게 하는 것이다. (6) ‘위폐함’은 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것으로 고인을 대신하여 혼(신위)을 모시는 것이다. (7) ‘칠성판’은 북두칠성을 본떠서 일곱 구멍이 뚫린 나무판으로 죽음을 관장하는 칠성신에게 빌어 구제받기 위한 것으로 샤머니즘에서 기인한 것이다.
▲ 칠성판 위에 고인을 안치하고 장례
또한 ‘칠성판’은 도교의 샤머니즘 의식에 사용하는 기물로 죽음을 관장하는 북두신에게 빌어 잡귀를 쫓아내어 구제받기 위하여 칠성판 위에 고인을 안치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특히 ‘칠성신’은 총 일곱의 저승신에게 7일마다 제사하여 진관대왕, 초강대왕, 송제대왕, 오관대왕, 염라대왕, 변성대왕, 태산대왕에게 사십구재까지 제사를 지내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사십구재를 49재 예배로 둔갑하여 지내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현재의 장례는 생명의 기원으로 칠성판에 망자를 눕히고, 사생발복을 기원하면서 일월오행(일월화수목금토) 천지의 에너지 일곱 횡대를 하였다. 횡대는 일곱 판으로 제1성부터 제7성으로 불린다. 기타 고인의 영혼이 저승으로 갈 때 땀을 닦는 땀수건인 ‘보공’ 등이 있다. 이것은 무속신앙과 미신 그리고 타 종교에서 기인한 기물과 부적으로 얼룩진 혼합종교 장례식인 셈이다.
성경은 하나님 외의 신적 존재에게 의지하거나 그것을 숭배하는 것을 금한다(출 20:3-5). 특정 물건·장소·별을 신적 중재자로 삼는 행위는 우상숭배로 간주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의례·물건에 대한 마술적 신뢰(주술성)도 할 수 없다. 어떤 행위를 반복하거나 물건에 효능을 부여해 안녕과 복을 보장받으려는 태도는 성경적 신뢰(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충돌한다. 성경은 의식 자체의 힘을 신뢰하는 것을 경계한다(사 47:12-14; 렘 10:2-5).
그리고 혼령과 다신적 세계관과의 접촉 우려가 있다. 굿·의례·부적 등은 혼령론이나 다신적 구조를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사람을 영적으로 속박하는 권세가 있음을 인정하나, 그 권세는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통해 다뤄져야 한다고 가르친다(행 19:13-20; 고후 10:3-5의 영적 권세 관련 맥락). 행위로 구원 혹은 효험을 얻는 태도는 배격해야만 한다. 의례적 행위가 복이나 구원이나 영적 보호를 얻는 수단으로 간주 되면, 성경의 ‘은혜와 믿음’의 교리와 상충 된다(엡 2:8-9).제의 자체가 구원·영적 안전의 근원이 될 수는 없다.
성경 출애굽기 20:3-5(우상 경계), 신명기 18:10-12(무당·점술 금지), 이사야 47:12-14(주술적 의존 경계), 예레미야 10:2-5(우상에 속지 말라), 사도행전 19:19(무술·주술의 폐기 사례), 골로새서 2:8(철학과 전통에 속지 말라)에 말하고 있다.
▲ 기독교 장례문화를 성경적 기반 위에서 보존하고 목회돌봄과 선교(전도)의 장으로 확산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 장례문화는 전통적인 유교, 불교, 도교적인 요소와 무속신앙 속에서 혼합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화적 혼합은 기독교 장례 예식의 본질이 훼손되는 문제를 초래해 왔다. 현재 기독교 장례문화에서는 성경적 정체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신앙에 부합한 순수한 기독교 장례 예식을 정립하고 확산해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독교 장례문화를 성경적 기반 위에서 보존하고 확산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유가족을 치유하고 돌보는 목회 돌봄으로 목회 선상에서 기독교적 가치 실현과 신앙 공동체와의 유대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 장례문화를 실천하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한다면 첫째, 천국입성(환송) 의례로 성도의 구원 확신과 남은 가족에게는 위로와 치유의 예배로 목회 돌봄의 시간으로 나아가길 원한다. 둘째, 천국 입성을 통해 예배와 말씀으로 천국 입성을 증거하는 역사를 이루고 가나안 가족(교회 안 나가는 성도)의 신앙 회복을 이루어내는 기회로 삼기를 원한다. 셋째, 장례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거룩한 선교(전도)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장이 되길 바란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으나 한 장례식장에는 평균 250여 명의 조문객이 방문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나안 성도나 유가족들은 평균 11명에서 20여 명이 된다. 죽음과 영생의 길목이라는 장례식이 가나안 성도의 회복과 유가족과 조문객의 전도와 선교의 기회로 적극 선용 한다면 한국 교회의 회복과 부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애도와 돌봄의 장기적 계획도 필요하다. 장례 후 방문과 상담을 1주·1개월·3개월·1년 등 정기적 점검과 모임으로 유가족을 지원하는 회복그룹으로 소그룹, 치유모임 프로그램, 또는 첫 기일이나, 기억의 날에 기념하는 작은 추모예배나 기념식으로 공동체를 기억하고 유지할 수 있는 행사도 필요하다.
▲ 국가장례지도사 자격을 갖춘 장례선교사(장례목사) 교육과 양성
장례선교사(장례목사)를 양성해 나가는 목회자. 교회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성도의 장례일지라도 장례가 보통 상조사에서 파견한 전통적인 장례를 배우고 익힌 국가장례사 자격을 취득한 장례지도사에 의해 장례 의례가 진행되기 때문에 기독교 장례와는 여러 면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소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자격증을 겸비한 기독교장례선교사(장례목사)를 양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 실무적 목회적 권고 필요
가족 가운데 기독교인과 전통 신앙인이 공존할 때 신앙적 혼란과 공동체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실무적, 목회적 권고가 필요하다. 칠성판, 굿, 제사 등은 신앙적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기독교 신자는 이를 거부하거나 참여를 꺼려 하고, 반대로 비신자, 전통 신봉자는 그것을 중요시할 수 있다. 이에는 성경적 설명과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왜 문제가 되는지(우상·주술성·믿음의 대상 혼동 등)를 성경적 근거로 차분히 설명하고, 기독교적 방식(기도, 성경낭독, 예배, 목사 축도 등)으로 위로하고 보호를 구하는 대안을 제안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족 관습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면, 종교적 의미가 분명한 요소(칠성판, 부적, 굿 등)는 생략하고 문화적·기념적 요소(예: 흰옷, 예배 등)는 허용하는 방식으로 절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칠성신 숭배나 “일곱 번 묶는” 의례는 문화적으로 오랜 뿌리를 가진 관습이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는 우상숭배, 주술성, 의례적 의존과 같은 문제들 때문에 비성경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이다. 성경적 원리를 바탕으로 존중과 이해를 가지고 대화하고, 신앙적으로 안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회적, 실무적으로도 효과적이다.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관점도 전통 장례는 유교적 영향 아래에서는 조상 숭배와 혈연 중심의 연속성, 제례(祭禮)를 통한 후손과의 이어짐이 강조된다. 죽음은 가족과 집안의 연속성 속에서 의미를 갖고, 제사와 성묘를 통한 관계 유지를 중요시 한다. 기독교 장례는 부활과 영생, 개인의 구원이라는 신학적 틀을 중심으로 죽음을 해석해야 한다. 죽음은 하나님의 심판과 영적 전환으로 보이며, 장례는 고인의 신앙을 증언하고 유가족에게 위로와 소망을 제공하는 자리이다.
의식과 절차에도 차이가 있다. 전통장례는 상례 규범(상복 착용, 상여·문상, 초상집 차림 등)이 비교적 복잡하고 기간(통상 3일·7일·49일 등)이 길다. 샤먼(무속인)의 굿이 개입되는 경우도 있고, 제사상, 음식, 제물 등 물질적, 상징적 준비가 많다. 반면에 기독교 장례는 예배 형식을 띠며 목사가 주관하는 설교와 기도, 성경봉독, 찬송가가 중심이다. 장례식장은 교회당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고, 절차는 비교적 단순·간결한 편이다.
결론적으로 성경적 정체성이 부족한 장례식을 타개하고 성경적 기독교 장례 예식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타 종교에서 기인한 기물과 부적들을 없애고, 입관실, 빈소, 접견실 등의 기독교문화에 맞는 전문 장비를 설치하여 기독교적인 거룩함과 은혜가 임하는 장례식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기독교 장례식이 단순히 애도의 자리가 아니고 기독교의 생명과 부활 신앙을 선포하는 자리로서 그 역할을 다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경 말씀에 근거한 천국 입성(환송) 장례식으로 성도의 아픔을 치유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장례선교의 장, 건강한 목회 돌봄이 있는 장례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장례 이후에도 지속적 돌봄(심리·영적)과 가나안 성도의 회복과 조문객의 전도사역의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교회와 사회에 실천하며 선교적 역할을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독교 장례의 실천 운동이 확산되기를 소망한다.
김민섭 목사 [서울문화교회 / 국가장례지도사 / 기독교장례문화실천운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