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 목사 [참빛교회]
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별것 아닌 간식 하나로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즈음 요한복음 6장 강해를 준비하던 어느 날, 오병이어를 드린 한 소년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들 모습(?)과 달리 갈릴리의 한 아이는 자기의 것(오병이어)을 예수님께 드렸다. 최소 만 명이 모인 자리에서 도시락을 가진 사람이 정말 그 아이 하나뿐이었을까. 그리고 왜 그 어린아이만 예수님께 자기 것을 드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을까. 어른이라면 하지 못했을 ‘계산하지 않는 순수함’ 때문이다.
어느 시골 농가에 건기로 한 달 동안 비를 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람들은 농가에 물을 대려고 트럭을 타고 지역 정수장에 가서 물을 채워 오느라 바빴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작물은 점점 시들어 가고 있었고, 개울과 하천은 땅속으로 사라졌다.
가축들은 피곤해 하고 있었고, 밭은 타들어 갔다. 그때 여섯 살 빌리라는 어린아이는 작은 손바닥에 두세 스푼 되는 정도의 물을 담았다. 아주 조심조심 숲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는 아들이 걱정 되서 뒤따라갔다. 가만히 보니 빌리가 땅에 누워 있는 작은 새끼 사슴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빌리는 탈수와 열사병에 걸린 게 분명해 보이는 사슴에게 손에 든 물을 조금이라고 흘리지 않으려고 잔뜩 힘을 주고 있었고 새끼 사슴은 물을 힘겹게 핥아 먹었다. 물이 다 떨어지자 빌리는 뛰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수도꼭지를 틀어 다시 손바닥만큼의 물을 받는다. 새끼 사슴은 힘을 얻었고, 그 모습을 본 이웃들은 ‘작은 물 한 스푼에도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작은 희망이 마을 전체에 퍼졌다. 어른들도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다시 힘썼다. 곧 가뭄은 지나갔고 하늘이 내리는 비를 맞았다.
경기도 포천에 한 작은 교회는 매년마다 교회와 연결된 선교사님 몇 가정을 초청해서 ‘선교사 초청 잔치’를 연다.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 좋은 곳 여행 시켜드리고, 좋은 음식 대접하고, 때로는 여유가 되면 위로금도 전달한다. 이 행사의 포스터 디자인은 매년 바뀌지만 변하지 않는 글귀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지친 어깨 위에 살포시 얹은-손바닥 만큼의 위로” 전 세계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계시고, 또 지구촌에 선교지는 얼마나 넓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한 작은 교회가 준비하는 위로회가 어떻게 열방의 갈증을 채울 수 있을까 싶지만,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손바닥만큼의 작은 섬김을 하나님께 드린다. 사실 교회 형편을 생각하면 인력도 재정도 시간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인간적인 계산으로 생각하면 못할 일이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계산보다 사랑을 먼저 앞세운다. 열방에 많은 선교지와 선교사님들을 전부 채워드릴 수는 없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으로, 그 교회만의 ‘손바닥만큼의 위로’를 전하며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어디까지 계산하고, 언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고민한다. 계산과 믿음 사이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고민될 때는 사랑으로 결정해야 한다.
오늘 우리에게 ‘오병이어’는 무엇일까? 손에 들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와 같은,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하루 10분 기도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의 말일 수 있으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미미한 물질, 혹은 한 사람을 향한 인내의 사랑일 수 있다. 현실은 계산을 요구하지만, 믿음은 사랑으로 결론을 내린다. 작은 헌신도 주님의 손에 들어가면 기적이 된다.
손바닥만큼의 위로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킨다. 지친 어깨 위에 살포시 얹은 손바닥만큼의 위로, 딱 그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믿음의 수고를 멈추지 말자. 하루의 삶을 버겁게 살아내는 가족들, 힘을 잃은 것 같은 교회와 성도들, 우리 주변에 이웃들의 지친 어깨 위에 살포시 얹는 손바닥만큼의 위로, 그 정도면 충분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음’을 통해 여전히 큰일을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