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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와 교회의 사명
인공지능 시대와 교회의 사명
2025-12-01 오후 7:32:00    성결신문 기자   



| 들어가며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은 교회로 하여금 인공지능 대한 신학적인 의미는 물론 인공지능이 펼쳐놓는 세상에서 어떻게 기독교적 가치를 접목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묻게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는 인공지능에 얽힌 인지적 차원과 그 기능 그리고 관계성이 과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만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향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면에서는 인공지능의 본질이나 그것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 개념에 대한 신학적인 논의 자체를 묻는 것 보다는 오히려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사회 변동의 복판에서 교회가 어떠한 존재 방식을 보여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 더욱 긴급하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기술과 문화와 사회 제도 전반을 바꾸기에, 이에 대한 신학적 전망은 기술을 둘러싼 합리성, 문화와 사회 제도의 변화들, 그리고 교회의 존재 방식들을 아우르는 시야를 요구한다.

인공지능 신비화를 넘어서
우선은 인공지능에게 인간성을 부여하는 의인화나 인간성을 초월하는 신적 존재로 여기는 신성화를 피해야 한다. 20세기 중반 입출력-처리 인공 뉴런이 구상된 이래로,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의 도입과 인지 처리 신경망 모델의, 그리고 그 후 신경망의 연계와 이를 바탕으로 한 귀납적 처리, 자기-진화적 알고리즘, 그리고 모호성을 긍정하는 퍼지 논리 등을 활용하면서 인공지능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본질은 주어진 입력 데이터가 자율적인 체계 속에서 그에 맞는 정보로 변환되어서 기대되는 출력 결과물을 선별해내고 만들어내는가에 관한 것이다. 인공지능 연구의 목적이 컴퓨터 우리 인간들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정신들을 갖춘 기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어쩌면 인간과 같은 윤리적 위상과 판단을 내리는 범용 인공지능이 가능할 수 있고 혹은 실존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초지능도 대두될 수 있다. 

최근 25년 4월에 쳇 GPT 4.5.가 튜링테스트, 즉 인간인지 인공지능인지 정체를 숨긴 채 인터뷰를 진행해서 판단하게 하는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통에서 인간처럼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철학자들의 논의에 따르면,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의식을 가지기 위해서 신체화된 세계 경험과 그를 통한 학습을 가질 수 없으며, 그 안에서의 의미 경험과 의지와 의도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기에, 인공지능에게 의미에서의 지성과 자기의식을 부여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이 가지는 구원의 잠재성이나 존엄에 연관된 형상론에 대한 논의는 미리 논의될 수 있을지 몰라도 점에서 사변적인 담론에 머무르는 측면이 있고 시기상조인 측면이 많다.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변화들과 교회의 대응
어떤 면에서 교회가 시급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과연 교회가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삶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변화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은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측면들을 변화시킨다. 교회는 사역 확장을 위한 기술적 활용을 넘어서, 인공지능의 영향과 극복을 위한 교회가 할 기여의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

섣부른 의인화와 신성화를 경계
첫째, 교회는 인공지능 자체에 섣불리 인간적 혹은 신적 인격성과 종교적 아우라를 덧붙이는 인격화나 우상화에 대한 경계와 비판적 태도를 함양하고 신앙적 관점에서 기술의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 아직 자기의식과 의지를 가지는 인간 수준의 지능이 출현했다는 증거는 없기에 인간적이라 부를 수도 없으며, 나아가서 신적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하지만 서구의 경우 트위터에서 ‘알고리즘에게 받은 복’(Blessed by the Algorithm)이라는 해쉬태그에 얽힌 사례는 물론 국내의 경우 알고리즘 신이라는 표현들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모종의 인격적 신개념들을 일상의 경험에서 투영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2019년 일본 교토의 사찰에서는 반야심경 설법을 한 로봇이 사찰 관계자에 의해서 보살의 현현으로 선언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의인화나 신성화를 피하고, 인공지능을 정부와 자본, 집단의 기획에 따라서 왜곡 및 조작 가능하고 오용될 수 있는 기술적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해서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의 본령이 무엇이며 그 빛에서 기술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탁월성과 가치를 지능의 탁월성이나 효율적 기능에 찾을 때, 인공지능을 인격화하고 신성화하게 되지만, 그 가치를 하나님의 사랑에 연결되어 있고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마음에서 찾을 때, 우리는 인공지능 기술의 자리를 잘 찾을 수 있다. 신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 인간과 같거나 인간을 뛰어넘는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 속에서 인간과 피조계를 효율적으로 사랑하게 해주는 기술적 수단일 뿐이다.

대량실업 앞에서 구제와 돌봄
둘째, 교회가 주목할 것은 경제적 차원에서 인공지능 기술 혁신으로 발생할 대량 실업과 중산층 몰락에 대해서 교회 돌봄의 현장이 될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은, 30년간 중산 시민 계층의 일자리를 대체해 왔던 컴퓨터의 도입보다도 산업 구조 재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전망되며, 고학력 전문직종과 저학력, 비숙련 계층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법률, 의학, 세무 상담을 담당하는 인공지능들이 이미 상업화되었으며, 가설 수립과 문헌 학습, 그리고 실험 절차를 세우는 박사급 연구 인공지능이 개발되었다. 물류 관리, 배송, 요식업, 가사 노동 등 서비스 업종들에서 키오스크와 로봇이 이미 인간 인력들을 대체하고 있다. 

산업과 경제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도입과 함께 추구되는 이윤과 비용 절감이라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논리는 결국 기존의 중산 시민 계층을 파괴시키고 실업자들과 취약 계층들을 양산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 상황 속에서 직업 재교육을 통한 재취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점 기술을 통해 이윤을 얻는 기술 기업들에 대해서 로봇세나 부유세 등 사회적 환원을 요구하는 정치적 목소리 역시 있을 것이다. 

상황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적으로 산업 혁명 초기, 탄광과 공장 지대에서 저임금이나 실직에 처한 빈민들을 구제하며 그들의 삶을 통전적으로 돌보는 목회를 수행했던 웨슬리의 선례를 따라서 앞으로 쏟아져 나오는 청년 실업자들과 중-장년 실업자들의 삶을 돌보고 그 삶의 의미를 회복시키는 목회 패러다임을 준비해야 한다. 

교회는 앞으로 실업자들에 대해서 국가 차원에서의 사회 보장제도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할 때, 세밀하게 그들의 삶을 돌보는 구제의 작업도 수행해야 한다. 동시에 실직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가정 해체나 삶의 의미 상실 등 관계적 측면의 아픔들을 헤아리며 그들의 삶을 영적으로 돌보는 치유의 작업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실직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생활협동조합이나 여러 협력 네트워크들을 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더 나아가서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빈민 구제와 사회적 재분배 작업, 그리고 사회적 일자리 생성 등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게끔 기독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정치 참여와 시민운동에 대한 문제의식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술권력에 대한 경각심
셋째, 교회는 알고리즘의 지배로 불리는 기술 권력의 대두의 상황 속에서 이러한 지배에 대한 맹목적 숭배나 추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며 그러한 지배로 인해 생기는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정치적-행정적 차원에서 알고리즘의 지배(algocracy)라고 불리는 형태의 공적 의사 결정, 즉 알고리즘에 기반한 시스템들이 의사 결정에서 인간의 참여와 파악의 기회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초법적 국가기관이든 혹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데이터들을 수집한 거대 자본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국가기관이든, 이제 데이터 수집, 가공 기술과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결정이 인간 주체가 책임성을 가지고 내리는 결정을 대체하게 되며, 이에 대한 민주적 참여와 견제의 목소리는 배제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알고리즘의 지배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의사 결정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물론, 데이터 수집과 처리 과정의 숨겨짐, 복합 신경망과 수많은 입출력 층들로 인한 알고리즘 자체의 불투명성, 그리고 구조적 차원에서 결정의 자의성, 인종, 성, 계층에 대한 편견들의 반영 등 문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의적 결정과 그 은폐되고 불투명한 결정 과정으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지만 반면에 그러한 결과에 대해서 어떠한 해명이나 책임을 요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알고리즘에 대한 추종이나 승인은 기술을 통해서 통치에 개입하는 특권 집단들에 대한 복종과 다름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교회는 태도를 취해야 할까? 적어도 기독교적 전통이 그리스도의 통치를 강조하며 언제나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통치를 상대화하고 그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을 거부했다면, 마찬가지로 새로운 형태의 기술 지배와 그 통치 체제에 대해서도 그래야 한다. 

이는 곧 인공지능에 의한 지배를 그 자체로 인간을 뛰어넘는 효율적이고 현명한 통치라고 긍정하기 전에, 결국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와 지배욕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우리 전체의 왜곡된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비판적 의식을 가져야 한다.

애호가들의 기독 문화의 놀이터
넷째, 문화적 창작 행위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서 인간의 창조성을 발현시키는 기회와 교육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교회는 다시금 신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문화적 활동을 조장하는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현재 인공지능 사이트들이 음악과 동영상 그리고 미술 작품들을 만들어주게 되면서, 인공지능은 문화 창조를 위한 인간의 도야와 창작, 그리고 향유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가며, 인간의 문화적 창작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예술의 창달은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에게 주어진 신적 사명 중 하나로서, 인간은 자신이 부여받은 재능을 도야하고 이를 타인에게 표현하고 또한 표현을 수용하고 감상하면서 인류 전체의 문화적 삶과 표현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동체 안에서 종교적 동기를 바탕으로 종교적 문화를 면에서 가꾸고 또한 서로 표현하고 서로 감상할 수 있는 애호가들의 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비록 인공지능이 인간의 문화적 창조행위를 향한 노력과 노고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창작물들을 클릭 몇 번으로 만들어내지만, 인간은 그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서 다양한 문화적 산물들을 창조하고 이를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비록 기예적으로 서툴 수 있더라도 이들이 자신의 신앙을 다양한 문화적 매체들과 창작물들을 통해서 서로 표현해내고 또한 서로 감상할 수 있는 공동체들이 되어야 한다. 

세속 사회가 인공지능의 손쉽고 휘발적인 창작물로 인해서 인간의 창작 욕구를 소멸시켜간다면, 교회는 다양한 개인들이 자신의 문화적 창작 활동을 통해서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참여의 기회를 주는 애호가들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 나가며
아직 인공지능은 우리와 같은 혹은 우리를 압도하는 지성이 아니다. 비록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에게 기회들과 혁신들의 계기들을 주는 만큼, 종교적으로는 기술 대상에 대한 인격화와 우상화, 경제적으로 대량 실업과 의미 상실, 정치적으로 알고리즘의 지배, 문화적으로 인간의 문화 창조의 쇠퇴 등의 위험들을 수반한다. 

교회는 이에 대해서 신앙적 가치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자체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동시에 그 진정한 쓸모를 고민하면서, 앞으로 양산될 실업자들의 구제와 치유, 그리고 기술 지배에 대한 시각,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문화의 애호가적 도야와 표현 등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황은영 교수
성결대학교 교양대학 조교수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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