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현 목사 [등촌제일교회]
반려(伴侶)라는 말은 사전에 의하면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이 반려라는 말이 결혼한 사람의 배우자를 일컬을 때 주로 쓰였다. 그래서 반려자라고 할 것 같으면 인생의 동반자, 동무, 평생을 함께 하는 짝이라는 말로 우리가 이해를 하였다.
그런데 이 반려라는 말이 지금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된다. 어느 때부터인가 반려견, 반려묘 같이 동물에 이 단어가 쓰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반려 식물, 반려 곤충이라는 말이 쓰이고 무생물에게도 ‘반려’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는 반려 로봇, 반려 인형, 반려 안기 심지어는 반려 돌이라는 말도 사람들이 쓰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제일 낮고 1인 가구가 많은 한국에서는 반려견이 자식과도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결혼하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반려견을 자식과 같은 존재라고 설명한다. 한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니, 진돗개를 키우는 여주인 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가 저를 사랑했던 것처럼 나의 진돗개를 위해 가장 신선한 닭가슴살을 남겨두고, 나는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음식을 먹는다”
이쯤 되다 보니, “반려문화”는 이 사회의 구조를 조금씩 바꾸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을 잇는 대화의 도구가 반려 동물, 반려 식물, 반려 물품이 되는 경우도 많다. 반려견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반려물품이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터넷 상거래 업체에 의하면 2024년도에 처음으로 반려견을 태우는 ‘개모차’ 판매량이 유모차를 넘어섰다고 한다. 교회에서 이제는 성도들이 집에 혼자 있는 반려견, 반려묘를 봐야 하기 때문에 교회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는 말도 듣는 시대가 되었다.
시베리안 허스키 한 마리와 6마리 고양이를 같이 키워, 날마다 7마리의 동물과 함께 했던 나는 동물을 아끼고 애정 을 갖는 인간의 행위가 피조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에 속한 것임을 안다. 사람들이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애정을 가지게 되는 행위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려 문화가 지금의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과 죄악된 성품에 스며들어 ‘신종 우상’을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모습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려 동물을 들인 후에 사람들은 친구나 가족이 생긴 것 같다. 외로움을 달래 준다. 웃을 일이 생겼다라는 설문조사가 있었다고 한다. 반려 동물이 주는 좋은 영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마음의 빈 곳을 반려 동물, 반려 물품으로 채우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정서적인 지지와 사회적필요를 얻으려 한다. 이것이 과다한 나머지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인형과 결혼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반 려동물에 엄청난 유산을 남겨놓고 죽기도 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함께 함으로 만족과 기쁨 감사와 행복을 얻도록 창조가 되었다. 외롭고 힘들 때에 하나님으로 부터 위로를 받고, 삶의 의미를 부여 받아 다시 걸어 나가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기쁨의 근원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반려문화안에 깊이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반려 동물이나, 반려물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위험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당연히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들을 잘 돌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반려 동물이나 물품이 하나님의 자리 안에 앉게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한때 나이키의 경쟁자는 아디다스나 뉴발란스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했다. 스마트폰 때문에 사람 들이 운동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성탄이 가까워지는 이 시점에 하나님의 선물, 아기 예수님의 경쟁자가 푸들이나 말티즈, 포메라니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는 내가 애정했던 시베리안 허스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