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글 : 소음 속에 묻힌 아기 예수의 울음소리
거리는 예전보다 일찍 화려해집니다. 백화점의 미디어 파사드는 11월부터 성탄을 알리고,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은 연말 선물 리스트를 끊임없이 추천합니다. 21세기의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기술적으로 진보했으며, 전 지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성탄의 주인’을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라 불리는 21세기, 우리는 디지털망을 통해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바로 옆집 이웃의 고독사는 알지 못합니다. 기후 위기로 지구 반대편이 물에 잠길 때, 우리는 엄청난 양의 일회용 쓰레기를 배출하며 파티를 즐깁니다. 전쟁과 양극화의 소식은 끊이지 않지만, 교회 안의 성탄절은 그저 ‘우리끼리의 따뜻한 축제’로 축소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번 기획 특집에서는 2000년 전 베들레헴의 마구간이 오늘날 21세기의 교회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를 재해석하고자 합니다. 소비와 쾌락의 축제가 아닌, ‘성육신(Incarnation)’의 신비가 오늘 우리의 삶, 사회, 그리고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어야 하는지 성찰해 봅니다.
2. 시대의 진단: 21세기, 예수가 오실 ‘빈방’은 어디인가?
오늘날 교회가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려한 트리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빈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① 소비주의(Consumerism)를 넘어선 ‘자발적 가난’
현대 자본주의는 성탄절을 최대의 ‘대목’으로 변질시켰습니다. 성탄의 기쁨이 구매력으로 증명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왕궁이 아닌 구유, 즉 가장 낮고 비천한 자리로 오셨습니다. 21세기 교회의 성탄 준비는 이러한 소비주의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풍요로움을 과시하는 행사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풍요를 덜어내어 결핍된 곳으로 흘려보내는 ‘자발적 가난’의 영성이 필요합니다.
② 혐오와 배제의 시대, ‘환대’로서의 성탄
지금 우리는 이념, 세대, 젠더, 빈부 격차로 인해 극심한 갈등과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2000년 전, 요셉과 마리아가 묵을 곳이 없어 헤매던 상황은 오늘날 난민, 이주 노동자, 그리고 사회적 안전망 밖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의 모습과 겹쳐집니다. 성탄의 본질은 하나님이 죄인 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급진적 환대’에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문턱은 낮아져야 하며, 배제된 자들을 위한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③ 기후 위기 시대의 ‘생태적 성탄’
21세기의 가장 큰 위기는 단연 기후 위기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가 신음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고 일회용품을 남발하는 성탄 행사는 창조 질서 보전이라는 사명과 모순됩니다. 피조물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 현대적 의미의 성탄 묵상입니다.
3. 핵심 제언 : 교회가 회복해야 할 세 가지 자세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교회는 어떤 자세로 성탄을 맞이해야 할까요?
첫째, ‘성육신’의 영성: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이동
성탄의 신학적 핵심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입니다. 이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수직적 하강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는 ‘상승’을 욕망합니다. 더 큰 건물, 더 많은 숫자, 더 높은 영향력을 꿈꿉니다. 21세기 교회의 성탄은 방향을 다시 설정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이 높은 강단이나 화려한 조명이 아닌,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의 가장 어두운 골목을 향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호텔 로비가 아니라 냄새나는 마구간을 선택하셨습니다. 교회의 예산과 관심이 고아, 과부, 독거노인,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에게로 ‘내려가는’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육신의 재현입니다.
둘째, ‘임마누엘’의 실천: 고립된 자들과 ‘함께함’
디지털 기기는 발달했지만, 역설적으로 ‘고독’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계의 단절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는 성탄의 메시지는 단순히 교리적인 선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교회로 오라고 초청하는 행사 중심이 아니라,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 고립된 이웃을 찾아가는 ‘찾아가는 성탄’이 되어야 합니다. 쪽방촌의 독거노인에게, 타국에서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이주민에게, 실패와 좌절로 은둔하는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는 것이 수천 번의 설교보다 강력한 성탄의 메시지입니다.
셋째, ‘샬롬’의 확장 : 평화의 도구로 서는 교회
현재 지구촌 곳곳은 전쟁과 테러로 얼룩져 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천사의 찬송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한국 교회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성탄을 맞이합니다. 21세기 교회의 성탄은 갈등을 부추기는 혐오의 언어를 멈추고, 평화(Shalom)의 언어를 사용하는 기점이 되어야 합니다. 정치적 양극화로 갈라진 성도들을 하나로 묶고, 사회적 갈등 속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 그것이 아기 예수가 가져오신 평화의 실체입니다.
4. 실천 가이드 : ‘그린(Green) & 그레이스(Grace)’ 크리스마스 캠페인
개념적인 접근을 넘어, 21세기 교회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탄 캠페인을 제안합니다.
1) Green Christmas: 지구를 살리는 성탄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트리 장식의 다이어트: 과도한 전력 소비를 줄이고, LED 조명을 사용하거나 점등 시간을 조절합니다. 플라스틱 장식 대신 자연 소재(솔방울, 나무 등)나 재활용품을 활용한 오너먼트를 사용합니다.
Zero Waste 파티: 교회 행사 시 일회용 컵, 접시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텀블러와 개인 식기를 지참하도록 독려합니다.
탄소 금식 헌금: 성탄절 기간 동안 절약한 에너지 비용이나, 대중교통 이용을 통해 절감한 비용을 기후 난민을 돕는 헌금으로 사용합니다.
2) Grace Christmas: 은혜가 흐르는 성탄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빈 의자’ 캠페인: 성탄 예배 시, 우리 곁에 없는 소외된 이웃을 기억하기 위해 예배당의 의자 일부를 비워두거나 그 자리에 소외된 이웃의 이름(난민, 노숙인, 실직자 등)을 적어두고 기도합니다.
선물 상자의 방향 전환: 교환식 선물 나누기 문화를 지양하고, 지역 보육원, 미혼모 시설, 외국인 노동자 센터 등에 필요한 물품을 사전에 조사하여 전달하는 ‘매칭 기프트’를 진행합니다.
성탄 헌금의 100% 사회 환원: 성탄절 헌금 전액을 교회 내부가 아닌, 교회 밖의 긴급 구호나 지역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세웁니다.
5. 나가는 글 : 다시, 구유 앞에 무릎 꿇으며
21세기는 화려하지만 공허합니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영혼은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가 성탄을 맞이하는 자세는 ‘복원’이어야 합니다. 화려한 백화점의 조명에 빼앗긴 성탄의 주권을, 낮고 천한 구유의 자리로 되찾아와야 합니다.
성탄절은 12월 25일 하루의 ‘이벤트’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방식이 우리의 삶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성탄 장식을 걷어낸 후에도,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손길이 남아 있다면, 지구를 아끼는 작은 실천이 계속된다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성탄은 완성될 것입니다.
올해 성탄절, 우리 교회가 세상의 화려함을 쫓는 대신, 기꺼이 작아지고 낮아져서 누군가의 ‘따뜻한 구유’가 되어주기를 소망합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촛불 하나가 더 밝게 빛나듯, 혼란한 21세기 세상 속에서 교회가 밝히는 성탄의 빛이 절망하는 이들에게 참된 소망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록] 묵상을 위한 짧은 제언: 성탄을 기다리는 4주간의 여정
대림절 1주 (기다림):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침묵 속에 오시는 주님을 묵상하는 ‘디지털 단식’ 실천하기.
대림절 2주 (회개): 나의 소비 습관을 점검하고,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하여 나누는 ‘비움’ 실천하기.
대림절 3주 (사랑):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연락이 끊겼거나 소외된 이웃에게 손 편지나 따뜻한 안부 전하기.
대림절 4주 (평화): 가족, 동료, 이웃과 갈등이 있었다면 먼저 사과하고 화해의 손길 내밀기.
강명국 목사 [늘사랑교회 /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