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준 목사 [새누리교회]
현재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는 외부의 압력이 아니라 내부의 균열에서 비롯된다. 특히 갈등의 중심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재정 문제’는 교회의 거룩함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성도들의 신앙 고백인 헌금이 법적 공방의 수단으로 전락한 풍경은 이미 익숙한 비극이 되었다. 이러한 난맥상의 기저에는 투명성 부재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자리하며, 목회자의 정직성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이 병은 치유될 수 없다.
정직성을 저버린 목회자가 전체의 몇 퍼센트인지 수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재정 공개를 꺼리는 교회가 부지기수인 현실은, 그 이면에 정직하지 못한 집행이 자리 잡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거두기 어렵게 한다. 투명한 공개 장치가 부재한 관행은 대개 목회자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결국, 굳게 닫힌 회계 장부는 목회자의 도덕적 결백을 증명하기보다 오히려 그 정직성에 깊은 의구심을 던질 뿐이다.
교회 재정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성도들의 헌신이 응축된 ‘거룩한 공적 자산’이다. 당연히 그 집행 과정은 어떤 의혹도 남기지 않을 만큼 맑아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은혜’라는 명목하에 재정의 투명성을 간과하곤 한다. 목회자의 선의에만 의존하는 맹목적 신뢰가 감시 없는 권한으로 변질될 때, 교회의 영적 권위는 이내 무너지고 만다.
목회자의 정직성은 강단 위의 설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돈의 궤적’에서 증명된다. 목회자가 판공비와 목회 활동비를 사적 용도와 모호하게 섞어 쓰거나, 재정 보고를 요식 행위로 치부하는 순간, 그가 전하는 복음의 진정성은 증발한다. 성도들이 재정 공개를 요구할 때 이를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불신’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정직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교회 분쟁을 막고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명확하다. 목회자가 스스로 재정의 ‘블랙박스’를 깨고 나오는 것이다. 재정 집행의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유리판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외부 회계 감사를 수용하고, 성도들에게 십 원 한 장의 쓰임새까지 정직하게 보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목회자의 영적 권위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다.
세상은 교회에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세상의 기업들도 투명 경영을 외치는 시대에, 하늘의 법을 따른다는 교회가 재정 문제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정직은 목회자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다. 돈에 대해 정직하지 못한 목회자가 어떻게 영혼의 순결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제 한국 교회는 ‘돈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목회자가 재정 관리의 전권을 내려놓고 정직한 청지기의 자세로 돌아갈 때, 비로소 교회 내 분쟁은 잦아들고 잃어버린 세상의 신뢰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함은 불편함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빛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시장에서 단돈 천 원을 깎으며 고단한 일상을 버텨낸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내놓은 물질이 헌금이다. 그 눈물 어린 물질이 누군가의 뒤섞인 욕망으로 흘러 들어가는 비극은 종결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화려한 부흥의 구호가 아니라, 목회자 스스로 제 살을 도려내는 듯한 처절하고도 정직한 자기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