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철 교수[성결대학교]
작년 한 해 동안 지성인의 사회에서 화두는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Micheal Sandel)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였다. 샌델은 이 책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소개한다. 행복, 자유, 미덕이 바로 그것이다. 행복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다. 자유는 계약의 자유가 기본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임마누엘 칸트의 철학적 바탕을 두고 존 롤스에 이른다. 샌델의 여정은 공리주의와 자유주의의 정의관에서 시작하여 칸트의 도덕철학과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을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에 이르러 고전적 정의관인 ‘좋은 삶(good life)'과 ’공동선(common good)'을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를 한 마디로 소개하면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신분에 관련된 것인가 아니면 노력에 관련된 것인가? 샌델은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에서 정의(definition)를 내리지 않고 도덕과 종교와의 대화로 유도하고 있다.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 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든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 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370쪽).”
도덕이나 종교는 미덕을 통하여 정의를 구현하는데 소외된 계층을 끌어안는다. 최대 행복과 자유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미덕을 통하여 어느 정도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샌델의 희망이라고 볼 수 있다.
샌델의 강의를 들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성경구절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였다. 세상에서의 정의는 사람들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곳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정의를 실현하지 않음을 지적하였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그들에게 정의와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의를 실천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성경에는 보상적 정의와 보응적 정의가 나타난다. 보상적 정의란 열심히 일하고 수고한 사람에게는 “마땅히 그의 수고에 따르는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다. 동시에 보응적 정의란 맡겨진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은 지도자의 부패로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었고 그 결과는 이방인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의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기초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이방 세력을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오늘 기독교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기대하는 종교적 교리 또는 종교가 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측면이다. 공의는 정의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이루는 것이다. 공의(righteousness)는 정의(justice)를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것을 정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justification)이다. 공의는 신학적으로는 의롭지 못한 자를 의롭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인 “칭의”이며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은 기본이고 “사람들이 받아야할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는 은총”이다.
공의는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에게 그들이 가질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총이나 배려로 나누어주는 미덕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속이거나 빼앗아 더 갖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정의는 보응적 심판으로 임했다. 그렇다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 이상의 것을 가진 자”에게 국가나 공동체가 누진세를 적용한다거나 로빈 훗이나 일지매와 같은 의적을 통한 강제 집행은 정의를 실현하는 올바른 방법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같이 가진 자의 의무를 실감하고 자발적 참여를 통해 공의를 실천함으로 가능하다. 그 근원은 하나님의 공의, 마땅히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나누어주는 은총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사회가 불공정하고 어지러울수록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요청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