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은 교회의 가장 큰 기쁨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 기쁨에 곧장 도달하지 않는다. 교회는 먼저 사순절을 지나 십자가 앞에 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오면 교회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선다. 사순절은 성경에 명령된 절기가 아닌데, 교회는 왜 이 시간을 지나가는 것일까.
사순절의 기원은 대체로 4세기 교회로 소급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부활절을 앞두고 금식과 절제의 시간을 갖는 전통이 있었다. 2세기의 교부 이레네우스는 부활절을 준비하는 금식 기간이 교회마다 서로 달랐다고 기록한다.
어떤 교회는 하루를 금식했고, 어떤 곳은 이틀을 금식했으며, 또 어떤 교회는 며칠 동안 금식을 하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40일 사순절’은 4세기 이후 교회 안에서 점차 형성되고 정착된 전통이다.
이 40일의 기간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세례 준비였다. 초기 교회에서 부활절은 세례를 베푸는 중요한 절기였고, 세례를 준비하는 이들은 부활절을 앞두고 회개와 금식의 시간을 보냈다.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사건과의 연결이었다.
교회는 예수의 광야 금식을 단순한 과거 사건으로 기억하지 않고, 신앙 공동체가 함께 따라가는 영적 여정으로 이해하였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교회의 시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중세 교회에 이르러 사순절은 매우 엄격한 절기가 된다. 고기와 유제품을 금하는 금식 규정이 널리 시행되었고 생활 전반에 절제의 분위기가 강조되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금식 전통과 함께 또 하나의 문화가 등장한다. 바로 카니발(Carnival)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 carne vale, 곧 “고기여 안녕”이라는 표현에서 유래한다.
사순절 금식이 시작되기 전에 남아 있는 고기를 모두 소비하며 즐기던 풍습이 시간이 흐르면서 축제로 발전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화려한 카니발 역시 그 기원을 사순절 전야의 축제에서 찾을 수 있다.
금욕을 준비하는 교회력의 한복판에서 인간은 먼저 축제를 만들어냈던 셈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사순절은 또 한 번 중요한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된다. 1522년 취리히에서 일어난 이른바 ‘소시지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순절 기간에 한 인쇄업자의 집에서 사람들이 소시지를 먹은 사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단순한 식사 사건을 넘어 종교개혁 논쟁으로 이어졌다.
종교개혁자 울리히 쯔빙글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금식이 성경의 의무 명령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리스도인의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그의 글 「음식 선택의 자유에 대하여」는 인간의 전통이 신앙의 본질을 대신할 수 없다는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사순절 자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루터는 금식과 절제가 신앙생활에 유익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그것이 공로를 얻기 위한 종교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칼빈 역시 금식을 신앙의 훈련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미신적 공로 신앙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사순절은 의무적 규례라기보다 자발적 경건 훈련의 시간으로 이해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사순절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성경에 명령된 절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순절의 필요성을 의문시한다. 그러나 교회가 사순절을 통해 얻는 중요한 유익도 분명하다. 교회는 시간을 통해 신앙을 형성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생산과 소비의 달력을 따라 움직이지만 교회는 구원의 이야기를 따라 시간을 살아간다. 사순절은 교회가 다시 한번 십자가의 길을 기억하며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또한 사순절은 인간의 욕망을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금식의 본질은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의 절제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를 묻는 데 익숙하지만 사순절은 오히려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순절은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인지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결국 사순절의 의미는 어떤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데 있지 않다. 사순절의 의미는 방향에 있다. 교회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이 40일의 여정은 결국 교회를 한 곳으로 이끈다. 바로 십자가다. 그리고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우리가 부활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죽음을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그 길을 먼저 걸으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언제나 부활을 노래한다. 그러나 사순절은 교회가 왜 십자가를 지나 부활을 말하는 공동체인지를 다시 묻게 한다. 결국 사순절의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부활을 기다리는 공동체인가, 아니면 부활만을 소비하는 공동체인가. 교회를 이 질문 앞에 다시 세우는 시간, 그것이 바로 사순절이다.
임시영 목사 [신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