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자 목사 [안산실로암교회]
어느 주일 예배 후, 한 시각장애인 권사님께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혼자 교회를 오가며 느끼는 길이 마치 “산을 넘고 또 넘는 것 같다”는 고백이었다. 집에서 교회까지 잡고 올 수 있는 끈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비장애인에게는 쉽게 올 수 있는 교회가 누군가에게는 큰 용기와 수고를 요구하는 길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올해로 시각장애인 선교를 시작한 지 18년이 되었다. 궂은 날씨에는 성도들이 적게 나오실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 예상은 늘 빗나간다. 비와 바람을 뚫고 자리를 지키는 모습 앞에서 오히려 나 자신의 믿음이 부끄러워진다.
‘앞이 보이지 않아 불행할 것’이라는 편견은 시각장애인의 역동적인 삶을 지워 버린다. 그들은 점자, 스크린 판독기, 안내견 등을 통해 우리와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회 구성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의 ‘장애’가 아니라, 점자 블록 위의 불법 주차나 음성 안내가 없는 키오스크, 볼라드 등 그들이 마주하는 ‘장벽’이다.
시각장애인 대다수가 완전 실명(전맹)은 아니다. 빛이나 형체를 감지할 수 있는 저시력자가 많으므로, 개인별 시각 특성을 존중해야 한다. 이러한 잔존시력 및 디지털 접근성과 안내견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눈이자 파트너이다. 보행 중일 때는 만지거나 간식을 주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
“장애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주하는 환경에 있다.”라는 말처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시각장애인이 흰 지팡이를 짚고 거리에 나섰을 때, 특별한 용기가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장애우’ 대신 주체적인 존재임을 뜻하는 ‘장애인’을, ‘정상인’대신 ‘비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시각장애인의 세계는 어둠이 아니라, 소리와 촉각, 그리고 남다른 통찰로 채워진 또 다른 빛의 세계이다. 그 세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은 “저는 ○○○입니다”,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우리의 다정한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상황별로 시각장애인의 안내법을 몇 가지만이라도 숙지해 보자. 택시를 탈 때는 왼손은 차체에, 오른손은 차 문에 닿게 해주면 안전하게 승차할 수 있다. 물건을 살 때, “거스름돈은 5천원 권 1장과 천원 권 3장, 8천 원입니다”라고 말하며 물건이나 거스름돈을 전할 때 직접 손에 건네준다. 식사할 때는 젓가락을 쥔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고 반찬이 놓여 있는 그릇의 위치를 알려주거나 시계 방향의 위치로 설명해 준다.
처음 만났을 때, 첫인사는 악수와 함께 또렷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혀 준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함께 건너가시겠습니까?”라는 친절한 말 한마디와 함께 시각장애인이 붙잡을 수 있도록 팔꿈치를 살짝 내밀어 준다. 등을 밀거나 흰 지팡이 또는 옷자락을 잡아당기지 않도록 주의한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시각장애인을 보면 몇 번 버스를 타는지 물어보자. 의자에 앉을 때는 한 손은 의자에 다른 한 손은 책상에 닿게 해주면 바르게 앉을 수 있다. 컵이나 칼 등을 전달할 때도 안전한 부분을 시각장애인으로 향하게 하여 손잡이에 손을 닿도록 해 준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점검하는 거울과 같다. 특히 시각장애에 대한 이해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정을 넘어, ‘다르게 보는 방식’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시력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겉모습, 재력, 신체적 조건으로 판단한다. 정작 중요한 영혼의 빛은 보지 못한 채 살아갈 때가 많다. 시각장애인 성도들은 육신의 눈이 가려진 대신, 마음의 귀를 열어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진 분들이다. 누가 진정으로 ‘보고 있는’ 사람일까? 하나님의 임재를 온몸으로 느끼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보는 자들이다.
마가복음 10장 51절에서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던 예수님처럼, 우리의 판단으로 돕지 말고 그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자. 천국에는 장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정확한 표현은 ‘장애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 곳이 천국’이다. 이번 장애인 날을 기점으로, 교회가 그들에게 안전한 지팡이가 되고, 그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는 영적인 눈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울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참된 빛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