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호 목사(성결대학교 전 총장)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고(출33:18),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했다(요14:8).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숨어계신 하나님으로 자기를 계시하신다(사45:15).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당신이 인식되도록 자기를 숨기신다.
십자가의 고통에 숨겨진 하나님을 찾으려는 ‘십자가의 신학’(Theology of Cross)과 대조를 이루는 '영광의 신학'(Theology of Glory)이 있는데 영광 중에 계신 하나님을 찾으려는 것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16세기의 루터가 바울 신학에 근거하여 주장한 것인데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을 통해 죄인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고전 1:18-25). 영웅주의와 허영이 깃든 영광의 신학에 대조적인 입장이다.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혜가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자격과 공로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랑하는 유대인들이나 자기들이 가장 지혜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헬라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오늘날도 자기는 의롭고 자기 공로로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다(마7:13).
인간의 업적과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 발견
그러나 바울 사도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발견하면서(롬 5:8) 자기가 죄인인 것과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고백한다(딤전1:15). 바울은 자기가 추구하던 명예와 공로, 이기심과 욕심, 부와 권력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자기를 비우며 예수님을 얻으려 했다(빌3:8).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살기위해 자기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자기희생의 삶을 선택했다(행 20:24). 곧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한 고난의 좁은 길을 택한 것이다.
바울이 선택한 길, 신자들이 걸어야 할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는 고난의 길이다(마 16:24). 고난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고, 십자가 뒤에 숨어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인간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참된 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을 계시한다. 고난의 신학, 십자가의 신학은 신학적 사고를 사변적인 것에서 계시적인 것으로 향하게 하며,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것이다.
루터 당시 교회는 십자가의 고난보다는 예수께서 이루신 업적과 영광에 초점을 맞추며 관조(觀照)와 사변(思辨)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일성의 원리에 의해 마침내는 관조와 관상(觀想)의 대상인 하나님과 동일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루터는 인간의 업적과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 속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죄인인 인간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즉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죄인을 구속하시기에 구원 받은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죄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자기 부인의 삶, 하나님을 향하여 거듭난 사람으로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마귀는 영광과 부(富)를 약속한다. 자기 말을 듣고 따르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며 지혜로워질 것이라고 유혹한다. 아담과 하와는 이 시험에서 실패하고 죄인 되어 에덴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주겠다는 마귀의 유혹을 단연히 거절하고 하나님만 섬길 것이라 말씀하심으로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마귀에게 절하고 순종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얻으셨다(마28:18). 예수님을 따르며 물질적인 욕심을 이루려던 가룟 유다는 마귀의 꾐에 빠져(요13:2) 스승을 은 30에 팔았지만 부요하게 되기는커녕 받은 돈을 성전에 던져 넣고 물러가 자기 목숨을 끊고 말았다.
예수님을 따르며 영광과 세상적인 성취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실패하고 물러간다. 예수님 당시에도 하나님의 일을 하며 영생을 떡을 얻기 원하면서도 예수님의 자기희생을 통해 이루실 구원에 대하여는 비판하며 물러간 사람들이 많았다(요6:66). 오늘도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은 물질적인 부요와 영광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영광의 신학에 도취된 사람들이다. 이런 신학적 입장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부자가 되지 못하거나, 병이 낫지 못하면 믿음이 없거나 바로 믿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 스스로도 부끄럽게 여기며 다른 사람들도 그런 눈으로 볼 수 있다.
영광과 축복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기대하던 왕으로 즉위하시는 대신 십자가를 지셨고, 제자들을 향해서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명령하셨다. 진정한 영광과 축복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며, 땅에서 잠시 받는 박해와 고난은 장차 누릴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신 것도 고난이고, 사망의 그늘이 깔린 세상에 자기를 희생하러 오신 것도 고난이다. 자기 땅에 오셨으나 영접 받지 못하셨고, 오히려 시기와 박해 속에 버림받는 고통을 통해 우리를 구속하셨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 구원 받은 성도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날마다 죽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을 자랑했고, 자기의 연약을 통해 그리스도의 강함이 나타날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하며 세속적인 영광과 부귀를 추구하는 대신 자기희생과 십자가를 지는 삶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며 하나님을 높이는 길이다.
하나님의 지혜(구원)는 인간의 어리석음(십자가)을 통해 발견되기에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선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은 영광의 신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신학 즉 고난의 신학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루터는 말하기를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고난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며 그러기에 그는 고난보다는 업적을, 십자가보다는 영광을, 약함보다는 강함을, 어리석음보다는 지혜를 더 좋아하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루터는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라”(Only Cross is our Theology) 말한 것이다.
연약하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은 고난 속에 있는 인간들을 위로하시고 치료하신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사42:3, 참조 마12:20)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방문하시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사순절을 보내며 우리 신자들은 인간적 자랑과 교만은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과 박해와 수치를 기쁨으로 받는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이르러야 하겠다(행5:41).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