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택 목사 [은성교회]
오늘날의 사회는 가치관의 다양성이 극대화된 사회이다. 더 이상 하나의 절대적 가치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던 예전의 시대가 아니다. 각자의 경험과 철학, 문화적 배경에 따라 삶의 의미가 해석되는 시대이다. 종교 역시 절대적 진리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과 취향의 영역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이다. 그러나 시대와 삶이 변해도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며 이러한 질문은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에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는 생로병사로 이어지는 인간 삶의 모습 속에서 드러나는 무상함과 욕망의 문제를 직시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을 통해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불교의 근본적 한계는 구원의 출발점과 완성의 근거가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점에 있다. 불교는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해탈(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단순한 무지나 욕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문제로 선언하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이유이다.
오늘날 인류는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인간 스스로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인간 내면의 공허와 불안, 관계의 파괴와 삶의 방황은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물질적 풍요는 증가했지만, 영혼의 방향성은 잃어가고 있다. 즉, 인간 스스로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존재의 근본 문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독교 복음은 다른 모든 인간 중심적 종교의 구원관과 구별된다. 기독교의 구원은 인간이 스스로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 올라가는 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죄 가운데 있는 인간에게 먼저 찾아오신 은혜의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의 자기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 행위이며, 이러한 복음의 핵심은 인간의 공로나 수행의 결과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 위에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라고 선언하셨다. 끊어진 생명의 길을 완전하게 복원하신 예수의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주장이나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선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모든 종교가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서로 다른 길이 아니냐? 라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의 복음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의 종교적 옵션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벗을 수 없는 죄악의 굴레를 벗고 참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유일하고 무이한 구원의 길임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에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사랑으로 전신갑주를 입고 세상을 향한 복음의 증거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강압이나 논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드러내야 할 것은 이기적인 열심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 그것이 회복되고 드러나야 한다.
상대주의와 영적 혼합주의가 확산되는 시대 속에서 왜? 예수의 복음이여야 하는가? 참된 구원의 길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깨달음의 결과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단 하나의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은혜의 선물이고 우리를 살리는 참된 구원의 길임을 천명하며, 한국교회가 오늘도 그 진리의 복음 위에 굳게 서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믿음의 청지기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