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석 목사 [진주나들목교회]
쏜 화살처럼 바삐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고린도전서 15장(1~11절) 말씀을 묵상할 기회가 있었다. ‘예수님 부활의 장’이라 불리는 이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데, 마치 가시가 박히듯, 두 눈 가득히 박혀 떠나지 않는 단어가 있었다. ‘성경대로’라는 짧은 네 글자이다. 본서의 저자 바울은 고린도교회 지체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다시 상기시키며 이렇게 선포한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3, 4절)
2,000년 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과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을 깨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이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철저하게 ‘성경에 기록된 대로’(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즉 하나님의 오랜 약속과 신실하신 계획을 따라 이루어진 언약의 정점이었다. 이 묵직한 ‘성경대로’의 네 글자를 성령님의 이끄심 따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과연… 그리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성경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내 자신의 일상은 ‘성경대로’ 보다는 ‘내 뜻대로’ 그리고 ‘내 시간표대로’ 디자인되어 흘러갈 때도 있음을 고백한다.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말하고, 마치 지나온 경험을 절대적인 것처럼 타인에게 주장하며, 내 욕심과 계산을 따라 미래의 계획을 세운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내 능력인 양 어깨를 들썩이고, 삶의 궤도가 조금만 삐끗해도 이내 하나님을 원망하며, 근심 걱정에 빠지곤 한다. 기준의 중심이 말씀이 아닌 ‘내 자신’에게 흔들리지 않는 벽처럼 고착되어 있는 탓이다. 그러나 내가 주인 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대로’의 삶이었다.
인류의 죄를 짊어지는 십자가라는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도,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늘 기록된 말씀에 자신의 시간과 생명까지 맞추셨다. 그 철저한 순종이 있었기에, 마침내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실 수 있었다.
복음의 위대한 능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태동한다. 흔들리는 세상의 기준이나 가변적인 인간의 감정은 흔들거리는 갈대와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토록 변치 않는 견고한 반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성경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거창하고 거대한 신학적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말씀에 주권을 내어드리는 태도의 전환을 뜻한다.
누군가를 향한 미움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치밀어 오를 때, 내 감정 대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 성경대로 말씀 앞에 서 보는 것, 불투명한 미래로 인해 불안이 엄습할 때 내 염려 대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따라 ‘성경대로’ 살아 보는 것이다.
아주 작고, 작은 순종들이 겹겹이 선으로 이어지고, 점처럼 쌓일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성경대로’ 빚어지기 시작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말씀대로 이루어져 인류의 역사를 한 번에 바꾸었듯, 한 개인의 인생도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릴 때 진정한 영적 변화와 부활의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오늘 하루, 내 생각과 내 경험의 운전대를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방향을 온전히 맡겨보면 어떨까(?). 기다리는 희망이 아니라 즉시 순종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우리의 삶이 한 편의 읽히는 한 꼭지의 칼럼이 될 때, 그 인생의 제목이 부끄러움 없이 ‘성경대로’ 사는 삶, 주님이 기뻐하는 ‘성경대로’의 목양이 되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