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희 목사 [벧엘교회]
아프리카의 건조한 사바나에는 비가 자주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폭우가 쏟아지면 물은 가장 저항이 적은 곳을 따라 흐르고, 그렇게 생긴 물길은 다음 비가 올 때도 똑같이 반복되며 점점 더 깊어진다.
“물을 통제하지 않으면 물이 스스로 길을 만든다”는 말처럼, 우리의 생각과 마음 역시 의식적인 성찰 없이는 가장 익숙하고 쉬운 길로 흐르기 마련이다. 타인을 이해하기보다 판단하는 쪽으로, 기다리기보다 추측하는 쪽으로, 진실을 알기 전에 결론지어 버리는 익숙함. 우리는 이 무의식의 흐름을 경계해야 한다.
젊은 시절,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었다. “자녀가 몇 명이세요?” 나는 늘 “3남 2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대부분 “자녀가 정말 많으시네요”라며 웃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성(姓)이 모두 다르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지곤 했다. 혈연이라는 익숙한 물길만을 정상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보니, 복잡한 사연이나 재혼일 것이라는 편견 어린 오해가 순식간에 교차하며 목사인 나를 바라보는 시선마저 달라지곤 했던 것이다.
우리 가족은 때로 세상의 차가운 시선 한 가운데 서야 했다. 사실 우리 가정에는 배 아파 낳은 자녀들과 목회 현장에서 심장으로 품은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청소년들을 보면 심장이 요동치고, 상처받은 아이들의 아픔에 유독 예민한 걸까.” 늘 품고 있던 질문의 답은 성경을 읽다 뜻밖에 찾아왔다.
사무엘하 21장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이라는 구절에 시선이 머무는 순간, 알 수 없는 감동과 함께 깨달음이 스쳤다.
1960년대 산아제한 정책 아래, 산부인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시대의 강요로 감당해야 했던 낙태 시술. 아버지가 젊은 날 짊어졌던 그 아픈 생명의 무게를,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살려내는 사역’으로 갚으라 부르시는 것은 아닐까. 그제야 청소년들만 보면 무섭게 뛰던 내 심장의 이유가 온전히 이해되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끌어안고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바울의 고백이 내 안에서 메아리쳤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저들을 사랑하겠다는 기도는 내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고, 나는 기댈 어른이 필요한 영혼들을 하나둘 가슴으로 품기 시작했다.
물론 가족의 성(姓)이 제각각이라는 이유로 쏟아지는 편견 앞에서, 처음에는 억울한 오해를 풀고 싶어 일일이 사연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내가 해명할수록 정작 아이들이 “친자식이 아니다”, “사연 있는 아이들이다”라는 세상의 잣대 앞에 고스란히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기꺼이 침묵을 택했다.
내게 덧씌워진 오해를 벗어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귀한 아이들의 마음을 지켜내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기꺼이 서로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26년이 흘렀다. 나를 향한 오해는 안개처럼 걷혔지만, 편견 속에서 서로의 방패가 되어준 시간은 사랑으로 짙게 남았다. 가슴으로 품은 아이들은 혈연을 넘어 굳건한 신뢰로 묶인 자녀이자 제자로, 내 목회의 가장 눈부신 열매로 자라났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사랑만으로 능히 온전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음을 하나님은 내 삶으로 증명해 주셨다.
물은 저절로 가장 쉬운 길을 택해 흐른다. 우리의 마음도 사정을 듣기보다 추측하고, 이해하기보다 겉모습으로 규정하는 편견의 도랑으로 흘러가기 쉽다. 그러나 복음은 그 안일한 관성을 거스르는 십자가의 저항이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품으신 주님의 사랑은, 고여 있는 혈연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새로운 길을 내는 결단이다. 오늘도 우리는 기로에 선다. 세상이 터놓은 편견의 물길에 휩쓸릴 것인가, 주님이 내신 희생과 사랑의 물길을 따를 것인가.
낯설고 험하더라도 기꺼이 생명의 길을 터 나가는 단호한 신앙이 이 메마른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나는 오늘도 익숙한 세상을 거슬러, 기꺼이 그 좁고 생명력 넘치는 길 위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