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옥 목사(신암교회)
영어의 표현에 ‘유다의 키스’(Judas Kiss)라는 말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체포대를 위해 가룟 유다가 만든 군호입니다. 사악한 가룟 유다의 악하고 고의적인 배신을 이르는 말입니다. 지구상에 과거, 현재와 미래에 태어날 사람들의 주인공이 가룟 유다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도 그를 가리켜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매년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보내며 복음서를 읽다 보면 가룟 유다가 늘 마음에 걸립니다. 그러면서도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구에게나 가룟 유다와 같은 기질이 있고, 또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내 속에 가룟 유다를 닮은 점이 있지 않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본래부터 배신의 상징이 됐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특권과 기회를 갖고 있던 사람이며 자기만 잘 했다면 구원, 축복, 상급, 영광을 받아 누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특권과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던 것인데, 그것을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배신의 과정입니다. 미리 돈을 받아 놓고 예수님을 넘겨줄 시기를 엿보면서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 자리를 박차고 나가 군인들과 하속들을 데리고 체포하러 온 것입니다.
가장 황당하고 가증스러운 것은 예수님을 몰라보는 체포대를 위해 만든 군호입니다. 입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니까 확실하게 체포하라고 짜고 온 것입니다. 사악하고 고의적인 배신입니다. 이런 죄를 가리켜 ‘고범죄’라고 부르는데, 자기 스스로도 회개하기 어렵고 결코 용서받지 못하는 죄입니다. 이토록 사악한 가룟 유다의 배신이기에 영어 표현에 ‘유다의 키스’(Judas Kiss)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며 두 눈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그렇게 여러 차례 돌이켜 보려고 애를 썼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쳐버리고 결국 멸망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오래 참으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시간에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영원히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년에 했던 것을 자랑해도 소용없고, 과거에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미래로 미루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만이 나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기회를 놓치면 곤란합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도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멸망한 것은 그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멸망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구원받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오직 회개하지 않아서 멸망합니다.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회개했던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회개의 대명사 다윗입니다. 그는 남의 아내를 범하고, 자기체면 때문에 그 남편까지 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눈물로 회개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침상이 눈물에 잠길 만큼,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눈물의 사람 다윗, 회개의 사람 다윗이었습니다.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지나치지 말고, 내 속에 존재하는 가룟 유다와 같은 요소를 발견하고 다윗처럼 통회하는 기회로 삼읍시다. 배신자 가룟 유다가 아닌, 성군이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과 같은 칭호를 얻는 여러분들이 되기 바랍니다. 더욱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