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론(the doctrine of the Trinity)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교리이다. 기독교는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성자·성령의 세 위격(persons)으로 존재하신다고 고백한다.
이 교리는 하나님의 존재만이 아니라 구원과 예배, 인간의 변화와 교회의 공동체적 삶을 규정한다. 그러나 웨슬리안-알미니안 신학에서는 구원론과 성화론에 비해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삼위일체론이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본 원고는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과 웨슬리의 삼위일체론을 비교하여 그 신학적 특징과 실천적 함의를 밝히고자 한다.
1. 관계와 친교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공의회의 정통 신앙과 카파도키아 교부들(Cappadocian Fathers)의 신학에 기초한다. 대 바실리우스(Basil the Great),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는 성부·성자·성령을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으로 이해하면서도, 삼위가 사랑과 친교 안에서 완전한 하나를 이룬다고 보았다.
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곧 ‘상호내재’(mutual indwelling)이다. 삼위는 서로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신적 본질과 생명과 능력을 온전히 공유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치는 어느 한 위격의 지배에 의한 단일성이 아니라 사랑과 자유와 친교에 기초한 관계적 일치이다. 존 지지울라스(John D. Zizioulas)는 이를 ‘인격의 존재론’(ontology of person)과 ‘친교로서의 존재’(being as communion)로 발전시켰다. 하나님께서 삼위의 친교로 존재하시듯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인 인간도 관계 속에서 참된 인격으로 존재하며,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교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공동체가 된다.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과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이러한 관계적·사회적 삼위일체론(relational and social Trinity)을 교회와 사회가 지향해야 할 사랑·평등·상호성의 모형으로 확장했다.
2. 삼위일체의 ‘사실’과 ‘방식’
웨슬리는 1775년 설교 「삼위일체에 대하여」에서 삼위일체의 ‘사실’(fact)과 ‘방식’(manner)을 구별했다. 하나님께서 삼위이면서 한 분이시라는 사실은 성경의 계시로 믿어야 하지만, 그 존재 방식까지 인간 이성으로 완전히 해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론을 경시한 것이 아니라 계시되지 않은 영역에 대한 지나친 사변을 경계한 태도였다.
웨슬리가 정리한 「25개조 신조」(Twenty-Five Articles of Religion)도 한 분 하나님 안에 동일한 본질과 능력과 영원을 지니신 성부·성자·성령이 계심을 분명히 고백한다. 그는 성자의 신성을 약화시키는 종속론과 삼위의 구별을 부정하는 양태론을 모두 거부했다. 웨슬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학 용어를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하나님이시다”라는 성경의 증언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3. 구원의 역사 속에서 만나는 삼위 하나님
웨슬리에게 삼위일체론은 추상적인 존재론이 아니라 구원의 실제를 해명하는 교리였다. 성부께서는 사랑으로 인간을 부르시고, 성자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이루시며, 성령께서는 그 구원을 신자 안에 적용하고 증언하신다. 이 세 사역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구원 의지와 능력 안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성령께서는 성자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부께서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이셨음을 신자의 영과 함께 증언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내적 증거(inner witness of the Spirit)와 구원의 확신(assurance of salvation)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 사역 안에서 형성된다. 신자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성부의 사랑과 성자의 공로와 성령의 증언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케네스 콜린스(Kenneth J. Collins)는 웨슬리가 영국국교회의 신조와 필리오케(Filioque)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을 기본적으로 서방교회적이라고 평가한다. 또한 웨슬리가 하나님의 내적 존재에 대한 사변보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 활동하시는 삼위 하나님께 집중했다는 점에서 이를 ‘경륜적 삼위일체론’(economic Trinity)으로 설명한다.
반면 랜디 매덕스(Randy L. Maddox)는 웨슬리가 전통적인 서방교회적 삼위일체론을 유지하면서도 동방교회처럼 세 위격의 독특성과 동등성, 특히 성령의 인격적 사역을 강조했다고 해석한다. 웨슬리에게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달하는 비인격적 능력이 아니라 신자 안에서 증언하고 변화시키며 거룩하게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웨슬리가 ‘페리코레시스’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신학에는 성부·성자·성령께서 함께 창조하고 구속하며 성화(성결)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상호내재적 이해가 나타난다.
4. 동방과 서방을 연결한 웨슬리의 구원 이해
동방교회는 구원을 죄의 형벌을 면제받는 법정적 사건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구원은 죄로 손상된 인간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변화의 과정이다. 이를 ‘신화’(theosis), 곧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에 참여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한다.
웨슬리는 이러한 동방교회의 참여적 구원 이해를 받아들이면서도 서방교회가 강조한 죄 용서와 칭의(justification)의 은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공로로 죄인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법정적 구원 이해와 성령 안에서 인간이 치유되고 거룩하게 변화되는 참여적 구원 이해를 함께 강조했다. 칭의와 성화, 죄 용서와 형상 회복,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변화 사역을 삼위일체 하나님의 통일된 구원 사역으로 결합한 데 웨슬리 신학의 독창성과 통전성이 있다.
5. 예배와 삶으로 이어지는 삼위일체 신앙
웨슬리 삼위일체론의 중요한 특징은 실천성이다. 그는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의 삼위일체 찬송시와 성만찬을 통해 신자들이 삼위일체 신앙을 예배 안에서 고백하고 경험하도록 했다.
올바른 예배는 신자의 성품을 그리스도답게 형성하고, 성령께서는 신자가 거룩한 사랑(holy love)을 실천하도록 능력을 부여하신다. 웨슬리의 ‘응답적 은총’(responsible grace)은 하나님께서 먼저 베푸신 은혜에 인간이 인격적으로 응답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구원의 관계성을 보여준다.
이상의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존 웨슬리의 삼위일체론은 전통적인 서방교회적 삼위일체론이지만, 세 신적 위격들의 독특성과 충만한 페리코레시스를 강조하는 “동방교회적” 요소가 강다. 또한, 웨슬리의 삼위일체론은 오늘날의 신학 용어로 말한다면 소위 경륜적 삼위일체를 강조한 기독교의 예배를 위한 실천신학적 성격이 두드러진 삼위일체론이며, 사랑의 하나님의 속성 그 자체로부터 파생된 관계적이고 사회적인 삼위일체를 강조하고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랑과 친교 안에서 하나이시듯 교회도 세대와 직분과 계층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섬기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일치는 획일성이나 권위적 통제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랑의 친교여야 하며, 목회 역시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상호성(mutuality)을 드러내는 섬김과 협력의 사역이어야 한다.
웨슬리가 강조했듯이 삼위일체의 진리는 모든 살아 있는 신앙(vital religion)의 뿌리에 놓여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부의 사랑 안에서, 성자의 은혜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친교를 교회와 세상 가운데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오늘날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과 신앙(영성)은 별개의 것일 수 없음을 분명히 가르쳐준다.
*이 글은 「동방교회와 존 웨슬리의 삼위일체론 비교 연구」, 『신학과 세계』 제108호(감리교신학대학교, 2025년 6월 30일, 153-191쪽)에 게재된 내용을 교단 목회자와 독자들을 위해 축약·수정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윤기웅 목사 [화목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