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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샬롬
폭력과 샬롬
2026-09-28 오전 9:53:00    성결신문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을 보면서 법보다 주먹이 더 통쾌하다고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법과 제도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주인공이 단숨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통쾌함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깊은 좌절과 무력감이 놓여 있다. 제도보다 주먹에 더 큰 기대를 건다는 것은 피해자를 제때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정당한 책임을 묻는 사회적 체계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학교폭력과 교권 침해, 가정폭력, 성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이 중대한 범죄와 살인으로 이어지는 사건을 거듭해서 마주하게 된다. 예방책과 처벌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폭력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폭력을 유형별로 진단하고 사건이 발생한 뒤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제 우리는 폭력이 자라나는 정서적·관계적 환경과, 폭력을 멈추게 할 공동체의 책임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상담 현장에서 폭력 가해자들을 만나며 자주 확인되는 사실이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성장 과정에서 평안하고 안전한 관계, 곧 ‘샬롬’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부모와 친구, 교사에게서 존중받고 보호받은 경험이 부족했고, 때로는 교회학교에서도 샬롬과 안전을 누리지 못했다. ‘샬롬’이라는 말의 뜻은 알고는 있었지만, 삶으로 경험하지는 못한 것이다. 모든 폭력의 원인을 한 가지 경험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상처받은 사람이 반드시 가해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안전한 관계와 존중의 경험, 평안한 정서의 경험 즉, 샬롬이 폭력 예방에 중요한 토대라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으로 멈출 수 있을까. 폭력으로 폭력 가해자를 제압하고 잠시 침묵하게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폭력을 제압하기 위한 폭력 행위가 평화를 유지 시킨다고는 할 수 없다. 폭력은 신체적 상처와 함께 수치심, 공포, 분노, 복수심 같은 심리적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상처는 이후의 관계에서 공격이나 회피, 자기파괴의 모습으로 되풀이될 위험이 있다. 강력한 처벌은 필요하지만, 처벌만으로 피해자의 회복과 재발 방지까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정폭력도 부부싸움이나 집안 문제로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생명과 존엄을 위협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이혼이나 별거를 통해 폭력에서 벗어나려고 도움을 요청한 순간부터 지속적인 위험 평가와 실질적인 분리·보호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고와 보호조치 이후에도 전 배우자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반복된다는 사실은 단순한 신고 접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적극적인 지지와 돌봄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샬롬의 주체가 되는 교회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사건이 발생한 뒤 가해자를 얼마나 강하게 처벌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하곤 한다.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피해자가 처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들었는가. 폭력이 더 큰 범죄로 번지기 전에 가족과 학교, 지역사회와 교회는 무엇을 했는가. 피해자의 첫 호소를 믿고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서 폭력 예방은 시작된다. 

성경은 폭력의 대안으로 ‘샬롬’을 제시한다. 샬롬은 갈등이나 전쟁이 없는 조용한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샬롬은 생명이 보호되고 인간의 존엄이 존중되며, 깨어진 관계와 공동체가 건강하게 회복되는 온전한 상태를 가리킨다. 
시편 85편 10절은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라고 선포한다. 이사야 32장 17절도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라고 말씀한다. 성경의 평화는 정의와 분리되지 않는다. 

정의가 빠진 평화는 피해자의 침묵을 대가로 유지되는 거짓 평화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샬롬은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성급히 악수를 요구하는 값싼 화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샬롬은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폭력 사실을 분명히 밝히며, 가해자에게 합당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묻는 정의로운 평화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피해자의 신체적·심리적 상처와 훼손된 존엄이 회복되도록 돕는 과정이 되어야만 한다. 

관계 회복은 피해자가 원하고 안전이 충분하게 확보된 상황에서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용서는 피해자의 신앙과 양심에 속한 권리이지 공동체가 강요할 의무가 아니다. 

안전을 확보하지 않은 채 용서를 권할 때 신앙의 이름으로 피해자에게 또 다른 짐을 지울 수 있다. 가해자의 회개 역시 눈물이나 말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회개는 폭력을 즉시 중단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를 통해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삶이자 태도가 되어야 한다. 

샬롬은 처벌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 없는 화해를 거부한다. 그 목적은 보복이나 파괴가 아니라 피해자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하고 회복하는 데 있다. 동시에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직면하고 같은 폭력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제도와 관계의 구조를 바꾸는 일도 중요하다. 샬롬은 응징을 생략하는 지름길이 아니라 정의를 거쳐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폭력으로 가정과 학교가 무너지고 있을 때 교회는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는 그의 곁에 있었는가. “참아야 한다.”, “기도하면 달라질 것이다.”, “가정을 지켜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라는 말로 피해자를 다시 폭력의 현장으로 돌려보내지는 않았는지를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교회는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화해를 권하기에 앞서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 피해자가 교회 지도자를 찾아왔을 때 가장 먼저 건넬 말은 “용서하십시오”가 아니라 “지금 안전하십니까” 이여야 한다.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면, 교회는 경찰과 폭력 대응 전문기관에 즉시 연결하고, 피해자가 의료·법률·전문 상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한다. 교역자 개인의 선한 의도만으로 폭력 위험을 판단하거나 사건을 교회 안에서 봉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비밀 유지 역시 생명 보호보다 앞서는 안 된다. 교회는 피해자가 홀로 절차를 감당하지 않도록 곁을 지키되, 조사와 판단은 적절한 권한과 전문성을 지닌 기관과 연결을 협력해야 한다.

교회의 예방 교육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는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건강하게 표현하는 법, 타인의 신체적·정서적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방법, 위험할 때 도움을 요청하는 절차’를 교육해야 한다. 

폭력을 참는 것만이 믿음은 아니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가정이나 공동체를 배신하는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히 해야 한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신앙은 일상에서 생명을 지키고 샬롬을 실천하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교회는 폭력을 개인의 죄나 가정 내부의 갈등으로만 보지 말고 공동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공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교회마다 아동·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폭력 예방 및 대응 지침을 마련하고, 교역자와 교사들은 폭력의 징후와 위험 수준을 식별하도록 정기적으로 교육받을 필요가 있다. 신고와 외부 기관 연계 절차, 피해자 정보 보호 원칙,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조치와 절차 기준도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준비된 체계가 있어야 위기의 순간에 피해자 보호를 우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폭력의 시대에 말로만 평화를 권하지 않고 사람들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공동체적 구조를 세워 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영국 코번트리(Coventry City)에서는 보복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화해 운동을 시작했다. 북아일랜드의 코리밀라 공동체(Corrymeela Community)는 적대하던 사람들이 안전하게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이 사례들은 화해가 감정적 선언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안전한 장소와 훈련된 사람, 지속적인 제도를 통해 가능해진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 사례이다. 

미국 감리교 목회자이자 윤리학자인 마리 포춘(Marie M. Fortune)은 1977년 성폭력·가정폭력 예방센터를 설립했고, 이 기관은 여러 종교 전통의 지도자와 공동체를 교육하는 기관인 FaithTrust Institute로 발전했다. Safe Havens Interfaith Partnership을 설립한 앤 마리 헌터(Anne Marie Hunter)도 가정폭력 쉼터 봉사 과정에서 신앙 때문에 폭력적인 관계를 떠나지 못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목격한 뒤, 신앙공동체와 지역의 전문기관이 협력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 센터 사례는 교회의 역할이 사건을 내부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있지 않고 피해자가 전문적인 보호와 지원의 모범적인 사례이다.

국내 교회와 기독교 기관도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자녀를 위한 쉼터와 상담소를 세우고 의료·법률 지원 체계를 마련해 왔다. 1970년대 우리 교단이 총회 산하 『성결상담소』를 개소하여 운영하고, 1998년 10월(종로구 제1호) 『성결가정폭력관련상담소』를 개소한 일은 샬롬을 실천한 소중한 사례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샬롬을 실천하는 데 있어 개별 기관의 사역에 머물지 말고 교단과 지역교회 전체의 예방·대응 체계로 확장하는 사역에 집중할 때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안타까움을 표현하거나 ‘악한 세상’과 ‘말세의 현상’을 설명하는 설교 자료로 인용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피해자 보호 지침과 신고 체계를 세우고, 전문기관과 협력하며, 긴급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과 회복을 위한 기금을 준비해야 한다. 

가해자의 말뿐인 사과를 회개로 인정해서도, 피해자에게 용서와 화해를 재촉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이제 교회는 우리가 걱정하는 폭력 사회를 향해 샬롬을 가르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집중해야만 한다.

샬롬이 교회 안에서 반복되는 인사말이나 관념적인 설교 주제로 남아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두려움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공동체가 그 목소리를 믿으며, 필요한 보호와 정의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샬롬이 실현될 때, 폭력은 예방될 수 있다. 하나님은 샬롬을 배푸시는 분이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6) 예수님 역시 샬롬의 삶을 선포하셨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니” (눅 24:36). 

폭력 가해자가 되기 이전에 가정과 교회, 학교와 사회가 주님이 원하시고 베푸시는 샬롬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폭력 예방은 교육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마음 깊이 샬롬을 경험하는 것이 우선이다.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개개인과 사회 공동체가 샬롬을 깊게 인지하고 경험하는 가운데 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또한 교회는 폭력 피해자의 안전을 지키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는 체계적인 구조적 매뉴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폭력 없는 가정과 학교, 사회를 향한 교회의 사명은 샬롬의 복음 전파와 실천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하고 결실해야 한다.

김상인 목사 [성결상담소 소장]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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