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혜 교수 (성결대학교 기독교교육)
여름성경학교를 포함하여 교회교육, 신앙교육에 부여된 시간은 어린이들의 삶에서 너무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있는 교회교육의 교사들에게 효과적인 신앙교육 방법으로 ‘어린이와 함께 철학과 신학하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신학적 질문들은 무엇이며, 왜 그런 질문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질문들에 대해 교사들이 어떻게 대화적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 구체적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어린이는 철학과 신학을 할 수 있는 존재인가? 철학과 신학은 성인의 영역인 것만 같으나 어린이도 철학과 신학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독일의 종교교육학자 프리드리히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이들은 다섯 가지 중대한 철학적, 신학적 질문들-자기 자신, 하나님, 다른 사람, 죽음, 다른 종교-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어린이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적극적 활동과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관계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물음, 즉 자기 발달, 자아형성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질문을 갖는 이유는 유아기 때 형성하였던 부모의 개념이 하나님 개념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맘 놓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어디지?’라는 세상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하나님에 대한 물음으로, ‘내가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사랑이 정말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 왜 잘 해줘야 하지?’에 대한 윤리적 행동의 근거에 대한 물음이다. 이 질문은 어린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속해 있는 사회 집단은 다른 사람에게 잘 해야 한다고 윤리적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에 어린이들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요구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갖는다. 가까운 사람이나 동물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어린이들은 ‘왜 죽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죽음이란 어린이의 주변 세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관계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죽음에 관해 묻고 해답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은 다른 종교, 즉 ‘누구의 하나님이 옳으냐 더 나으냐’에 대한 질문을 가진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과 다른 많은 것들의 존재를 경험하면서 그들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타인에 대한 의문은 곧 자기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질문이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은 뭐죠?’ ‘우리는 뭘 믿어요?’라는 질문으로 타인과 다름을 인정하면서 자기 것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이와 함께 철학과 신학하기의 대화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구체적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어린이의 창문을 통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 신학적 질문들이 무엇인지, 왜 그런 질문들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인 교사의 관점으로 그들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면 어린이와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둘째, 어린이의 질문들을 우리의 질문들로 받아들여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다. 어린이다운 생각, 경험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용기를 북돋워주며 인정해주는 것이다. 단순하고 직접적인 답을 제공하려 하지 말고 대화로 함께 답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와 하나님을 제대로 안다고 신앙이 제대로 형성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신앙은 가르칠 수도 있지만 전수되기도 하는 것이다. 신앙은 내용이기도 하지만 관계이기도 하다. 약간의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어린이와 함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감으로 어린이들이 직접적으로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 신앙교육의 목적이 종교적 성숙이 아니라, 어린이의 종교적 성숙이다.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일방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주입하는 교육이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 수준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계발하도록 도와주는 어린이의 주체됨을 인정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즉, 어린이의 수준에서 철학과 신학하기를 인정하고 격려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진정한 대화에 목마름이 있는 이 시대의 어린이들의 철학적 신학적 질문들을 가지고 함께 철학하기, 신학하기의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그들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갈 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신앙교육의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