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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예배는 예배자로부터
진정한 예배는 예배자로부터
2011-08-31 오후 4:06:00    성결신문 기자   


전필헌 목사 (엘림교회)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반응’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없이 그분에게 나아갈 수 없고, 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순종과 응답을 통해 비로소 예배가 이뤄진다. 보통 예배를 크게 범주화하여 세 가지 형식으로 정리한다.

천주교의 예전예배(교회가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광 앞에 절하게 하는 것)와 개신교의 정통예배(회중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말하시는 것을 듣도록 하게 함), 부흥예배(일차적 목적은 복음 전파이고 그 다음 목적은 신자들이 불신의 세계에 살면서 경건한 삶을 통해 자신들의 간증거리를 불신자와 나누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기초로 하여 문화의 다양성을 담은 더 많은 예배의 형식이 생겨났다. 정통예배에서 찬양에 중점을 둔 경배와 찬양예배, 구도자에 초점을 맞춘 구도자예배와 콘서트 워십 등이 그것이다. 포스트모던 세대를 반영한 예배들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열린 예배라고 불리는 구도자 중심 예배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이멀징(emerging) 예배가 주목 받고 있다. 이전에는 영상과 드라마 등으로 흥미를 끌어내 젊은 세대들을 교회로 이끌었지만, 지금 세대는 흥미로운 프로그램보다 영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더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화변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마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헌신했던 예배지도자들의 노력과 열정은 얼마나 성과를 거두었을까? 예전을 만들고, 없애고, 다시 장점만을 취사선택 하려는 노력들은 바꾸어 생각해보면 모두 진정한 예배가 드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된 몸부림이지 않았을까.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형식이나 의식, 예전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담을 수 있는 외형적 틀은 될 수 있지만, 그런 형식이 진정한 예배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부르심에 바르게 응답할 수 있는 예배는 어떤 예배여야 할까. 어떤 조건들이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전제가 될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소돔과 고모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는 말씀처럼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찬양과 기도, 헌금에 익숙해져 계신다. 오히려 우리를 가증히 여기신다(1장 13절). 예배와 함께 악을 행하는 것은 견디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신다(13절). 기도해도 듣지 않는 것은 우리의 손에 죄가 많아서라고 말씀하신다(15절). 그렇다 예배는 예배자로부터 시작된다. 아무리 좋은 의식과 예전이라 할지라도 예배자의 잘못된 예배의 동기와 삶은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없다. 과연 우리의 예배는 어떠한지, 아니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되물어야 한다.

얼마 전 한 성도로부터 영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영성은 backstage라고 말해주었다. stage에 서있는 배우는 모든 것이 진실해 보이고 화려해 보인다. 마스크로 가려지고 뛰어난 화술과 절제된 동작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는 그가 그 무대에서 내려가 backstage에 있는 시간이다. 무대 뒤에 있는 그야말로 진정 그 자신인 것이다. 영성이 이런 것이다. stage의 삶이나 stage 뒤의(back) 삶이 동일한 것이 영성이요, 다르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영성 있는 사람이라고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이것이 예배자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 한국사회의 빛이었던 한국교회가 그 빛을 잃었다.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과정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그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승소와 패소를 떠나 한국사회는 이미 양측 모두를 유죄로 선언했다. 기윤실 발표는 좀 더 이를 수치화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있다. 작년 발표를 기억해보면, 성인 6명 중 1명 정도만 한국 교회를 신뢰하고 있으며 수치로는 17.6%이다. 신뢰도나 호감도에서 가톨릭, 불교의 뒤를 잇고 있다.

위선적이고 죄를 회개하지 않고, 탐욕으로 가득한 예배자들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바르게 선도해야 할 목회자들이 그 위선과 패악으로 사회의 지탄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 땅에 진정한 예배가 회복될 수 있을까. 분명히 예배의 회복은 이멀징 워십이 회복하려고 하는 의식이나 상징의 회복을 넘어서는 것이다. 예배의 회복은 예배자의 회복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그 예배자의 회복은 목회자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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