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물에는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격(格)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가진 인권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이지만 인격은 동등하지 않다. 인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해 주신 것이지만, 인격은 신앙과 교양을 통하여 스스로 갖추어 가는 것이다.
이순신의 인간됨과 원균의 인간됨의 격이 어찌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안중근과 이완용의 인간됨의 격이 결코 같지 않듯이 사람됨에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품격이 있는데 그것이 곧 인격(人格)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학력지수와 인격지수를 동일시하기도 한다.
정말 그들의 생각처럼 우리나라 같이 학력에 매달리는 나라에서 지식의 정도가 인격지수의 상승작용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인성교육 곧 성품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는 현실을 볼 때 학력지수와 인격지수는 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볼 때 그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이 알만큼 알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 것을 본다. 다른 이들이 부러워 할 정도의 사회적 위치와 그 자리에 오르기 까지 거쳐 온 학력과 경력을 기록한 이력서는 A4용지 한 장으로도 모자랄 정도이다. 그런데 일반 서민으로서는 견주기조차 어려운 그들의 화려한 학력과 빛나는 경력이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교묘하게 은폐하고 진실을 가리는데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이런 사실이 또 다른 의미의 식자우환(識者憂患)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떤 이들은 소유지수와 인격을 동일시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자체가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많이 가진 자에게 너무 관대한 사회현상이 문제이다. 인간 관계에서 상대에게 관대해지거나 머리를 조아리는 이면에는 배금사상(拜金思想)이 도사리고 있음을 본다. 우리는 소유와 인간됨은 정비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얼마 전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돈을 아무도 모르게 마늘밭에 묻어 두었다가 발각되어 국가에 압수당하자 그것을 도로 찾겠다고 많은 돈을 주고 소위 잘 나가는 변호사를 3명씩이나 선임했다는 보도를 통해 사람됨에 하자가 발생할 때 그 손에 들려진 돈은 유용한 것이 아니라 독약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나?”라고 하지만 세상이 돈 나고 사람 났다는 쪽으로 기우는 현실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외부로 보이는 것이 내면의 상태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신이 외면을 결정짓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천이라는 타이틀이 우리를 신자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혼과 인격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기에 신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향내가 나야 비로소 신자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이다. 성결의 은혜를 받아 성결한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성결을 존재가치로 삼고 사중복음의 깃발아래 세워진 예성의 지체(肢體)된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성결한 신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품격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