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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궁극적인 존재 이유
소명: 궁극적인 존재 이유
2011-11-01 오후 7:40:00    성결신문 기자   


김영택 목사 (삼성교회)

오스 기니스는 그의 책 “소명”에서 소명(Calling)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 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이 소명의 원리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역사의 큰 물줄기도 바꾸어 놓는 힘이 있다.

초기 기독교 운동의 탄생과 16세기의 종교개혁 운동은 소명에 붙들린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의 흐름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성경 또한 소명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자가 스스로에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 또한 소명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 소명의식은 목회자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들의 삶을 향하여 매순간 던져야 하는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소명은 인간의 죄성에 의하여 상실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소명을 확인하며 자기 자신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언제든 점진적으로, 때로는 급진적으로 타락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따르라”는 소명에 반응하여 사명자의 길을 가던 자들이,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리스도를 따름은 명분과 가식이 되어 버리며, 그들의 영혼 깊은 곳의 갈망은 더 큰 권력과 명예를 향하고 있음을 목격하는 것은 한국 교회에서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예와 권력을 향한 추구는 궁극적 존재 이유를 상실한 자들의 ‘에로스’(eros)적 타락을 의미한다. 에로스란 그 욕망의 대상이 지닌 매력적인 특징에 의해 발생하는 욕구, 동경, 욕망으로서의 사랑을 뜻한다.

그 매력은 강한 중독성을 수반하며 합리적 판단과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하다. 권력과 명예와 재물의 매력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에 사실상 안전지대가 없다.
 
이 에로스적 타락은 사랑을 욕망으로 전락시키며, 욕망은 권력, 명예, 재물에 대한 소유에 대한 욕망이며, 이 소유가 곧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한다. 여기에 소명이 설 자리가 없다. 권력과 명예 재물에 대한 에로스적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자들에게도 소명에 대한 작은 불씨가 살아 있지만 곧 꺼져 버리기 십상이다. 에로스적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인관관계를 거래의 관계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인간관계를 이용하며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일삼는다.

여기에 상대방의 가치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아가페적 사랑은 발견되지 않는다. 소명은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에 반응하며, 아가페적 사랑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가페적 사랑에 기반한 소명은 권력과 명예와 재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던 아가페의 사랑이 그 분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며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가페적 사랑의 완성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소유로서의 그 어떠한 욕망도 발견되지 않는다. 오히려 내려옴으로, 비움으로, 나눔으로 그 사랑이 특징지어 지는데 우리는 이것을 소명의 원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궁극적 존재 이유가 되는 소명은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서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그 가치와 특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부름 받아 그 소명에 반응하는 삶이 일차적 소명이 되어야 하며, 중심적 소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그분과의 관계 속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 관계가 파괴되고 난 후의 이 땅에서의 모든 직분, 직업, 감투는 모두 그 의미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명은 항상 개인의 욕심보다는 공동체적 선을 우선시 한다. 오스 기니스는 말을 인용함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우리의 공동체적 소명이 중요한 이유는 소명이 지나친 개인주의로 발전하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소명은 공동체적 소명을 보완해야지 그것과 모순되어서는 안 된다. 두 가지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성경에 나온 예처럼 공동체적 소명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의 개별적인 소명을 앞세워 교회의 공동체적 소명을 거부하는 자는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들이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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