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은 목사(시흥중앙교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우리 주위에서 가장 많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불과 수년전만 해도 신문의 1면 하단에 사진과 함께 나오는 기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만 하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중적인 일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교회들마다 사랑의 쌀을 거두어서 소외된 이웃들을 찾는 일들, 개인적으로 여러 자선 기관에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일들… 이런 일들이 많은 분들이 하는 일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 훈훈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메말라가는 사회 속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한줄기 생수가 되기도 합니다.
‘복지’라는 사회적 trend의 영향으로 인해 일반화 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되면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지만 때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역을 통해 복지 목회라고 부르는 분들도 있고, 부흥이 힘든 교회를 유지해 가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겉의 모습은 같지만 그 안에 품고 있는 내용은 다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자칫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어야 할 정체성을 잃기도 하고, 능력을 잃기도 하는 위험한 모습입니다. 디모데후서에서 기록하는 것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3:5)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잃어 가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현대 교회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독교 내부적으로는 여러 기관의 다툼들, 비도덕성, 개인의 이익을 취하려고 파벌을 만드는 모습들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안티 기독교의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어지면서 교회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의 결과로 세상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를 정의롭게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의 말에 신뢰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비기독교인들보다 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의 예배가 퇴색된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시설들이 낙후된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목사님들의 수가 줄어 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예배는 다양해지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있고, 더 큰 교회와 더 좋은 시설들이 생겨나고 있으면 성도수가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사님들의 숫자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겉모습은 화려해 지지만 정작 가지고 있어야 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가장 낮고 낮은 곳인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의 의도를 다시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셨던 곳은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시고 마구간의 말구유에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품으신 그 마음은 절박하였고, 간절했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영혼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더러운 마구간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의 반짝이는 장식이 아니라, 남들이 한다고 하는 도움도 아니라 영혼을 향한 그리스도의 열정을 다시 고백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