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일 목사[안양교회]
사람들은 임종이 가까워지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또한 책을 써도 그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마지막에 결론으로 남깁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 생애의 절정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일곱 마디의 말씀은 그분의 모든 삶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가상칠언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담겨있을까요?
예수님은 세 시간 남짓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동안, 곧 3시부터 6시까지(오늘날의 오전 9시-12시) 세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이셨습니다.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19:26, 27)
그리고 제6시(정오)에 사방이 어두워졌습니다. 이 신비한 어둠은 제9시(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세 시간여 만에 침묵을 깨고 네 마디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27:46; 막15:34)
5) “내가 목마르다.” (요19:28)
6) “다 이루었다!” (요19:30)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
1) 제1언: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첫 번째 말씀에서 우리는 이런 음성을 듣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머리맡에 붙여진 죄패에는 바로 우리의 죄가 기록되어 있던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3개 국어로 적힌 이유도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인류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든 이들에게 바로 이 용서를 선포하시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2) 제2언: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바로 그때 예수님과 함께 나무에 달려있던 한 강도가 예수님의 머리맡의 죄패를 읽습니다. 왕관대신 인류의 죄를 머리맡에 이고가시는 섬김의 왕의 모습을 그는 진정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그리고 간청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예수님은 그의 흉학한 과거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의 운명을 바꿔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3) 제3언: 예수님은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 가쁜 숨을 쉬는 순간에도 육신의 어머니를 걱정하셨습니다. 그 어머니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위해 성령께서 역사하신 통로였습니다. 이 순간에 모든 사람 앞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으로 통곡하는 어머니를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에게는 물론, 육신의 부모에게도 아들로서의 의무를 다하셨습니다.
4) 제4언: 초대교회의 어떤 이단들은 예수님의 인성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찌 영이신 하나님이 추한 육신을 입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얼핏 들으면 설득력 있는 말 같지만, 그분은 근본 하나님이셨지만 철저하게 인간이셨다는 말씀(빌2:6)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부르짖음은 바로 여기에 대한 반증입니다. 이 순간 주님은 당신 자신의 모습을 죄인과 동일시하십니다.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그 죄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는 죄인인 인간의 버림받음을 몸소 체험하시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5) 제5언: 말로만 끝나지 않으십니다. 실제로 느끼셨습니다. 목마름까지도 다 느끼셨던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몸소 다 느끼셨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우리의 슬픔과 아픔, 상처와 목마름에서 오는 고통까지도 먼저 다 겪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저 십자가에 던지기만 하면 됩니다. 걱정도 던지고, 문제도 던지고, 고통도 다 던져버리기만 하면 대신 담당해 주십니다.
6) 제6언: 경건한 유대인에게 출애굽한 사람의 숫자가 얼마냐고 물으면, ‘약 10억 명쯤 된다’고 대답한답니다. 그때 시내산에서 받은 것과 동일한 계명을 지키고 있는 한 누구든지 그 현장에 있었던 것과 다름없다는 표현입니다. 147장 찬송의 가사처럼, “거기 너 있었는가, 그때에?”라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왜냐면 나의 죄가 예수님의 머리맡의 죄패에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압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근본적인 목적인 죄사함의 사역을 바로 그 십자가 위에서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7) 제7언: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 땅에 왜 이리도 불의합니까?’라고 울부짖는 성도에게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입니다. 마지막 때의 심판자이신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잠시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심판자로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바른 길을 걸어가십시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절대로 흔들리지 마십시오.